세 계 최고의 첨단 기술 연구 단지, 반도체와 IT 산업 전진 기지, 벤처 비즈니스, 벤처 캐피털에 의한 산업 복합체.
미국 서부의 실리콘 밸리는 이러한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있지만 온화한 날씨에 한적한 시골 풍경을 연상케 하는 곳이다. 한때 광적인 닷컴붐에 의한 벤처 열기가 후끈 달아 오른 곳이지만 지금은 조용한 변혁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다.
연중 무휴의 IT 컨퍼런스 주요 개최지이기도 한 실리콘 밸리에서는 또 다시 웹2.0 이라는 비즈니스 트렌드가 무르익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다시 찾고 있다. 우리 나라에도 테헤란 밸리나 대덕 밸리 처럼 벤처 기업이나 연구소가 물리적으로 모인 공간이 있기는 하지만 실리콘 밸리에서 느껴지는 힘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실리콘 밸리에는 과연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혁신을 생산해 내는 인프라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오늘은 이 중 우리가 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 되는 몇 가지를 한번 이야기 해 볼까 한다.
기술 개념화와 가치의 확대 재생산
지금 실리콘 밸리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키워드는 바로 ‘웹2.0’이다. 이는 초고속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용자와 시간이 늘어나면서 온라인에 향상된 참여 문화를 기반으로 웹 서비스를 플랫폼처럼 제공하는 성공 기업들을 벤치 마킹해 만든 개념이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우리가 이미 다 경험 했고 이미 많은 웹2.0 모델들이 성공했다고 자신 하고 있다. 일부 맞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팀 오라일리는 사용자의 온라인 패턴 변화와 비즈니스 성공 모델을 개념화 하여 웹2.0이라고 이름 붙이기만 했지만 실리콘 밸리에서는 살을 붙이고 가지를 치고 이를 기반한 아이디어를 실제로 눈으로 보이면서 1년 만에 수십 개의 웹2.0 벤처 기업을 탄생시켰다. 닷컴붐의 폐해를 목도했던 사람들이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지만 이들의 노력은 어떻게 하면 사용자들에게 더 좋은 가치를 줄 것인가라는 아이디어를 끊임 없이 생산해 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글로벌 하면서도 보편적인 가치로 말이다.
반면 우리 나라에서는 카페, 아이러브스쿨, 싸이월드, 지식인, 아고라 등의 성공 서비스들이 가졌던 지향점과 성공 요인을 제대로 분석해 본 적이 있는가? 이를 개념화 하고 더 많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벤처 기업에 뛰어들 만한 환경이 구축 되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우리가 세계 최고의 인터넷 인프라와 인터넷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사용자들을 가지고도 못하고 있는 것들이다.
최근 미국 판 싸이월드인 마이스페이스에서 한 학생이 자기 교장 선생님의 홈피를 가짜로 만든 것을 가지고 사회적인 문제로 생각하고 이를 연구하는 학계 및 연구자들이 생기고 있다는 것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에 대한 사회적, 기술적, 비즈니스적으로 개념화 하고 확대 재생산 하는 인프라가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기술 공유 문화 및 선의의 경쟁
웹2.0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최근 실리콘 밸리에는 기술 주의자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차분하면서도 능동적으로 말이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 바로 오피니언 리더들의 자발적인 모임이다. 규모가 큰 유료 컨퍼런스가 아니라 소규모 기술자 모임이 계속 생기는 것이다. 작년만 하더라도 밸리 기술자들이 실비로만 모이는 무료 행사들이 매우 많았는데 정기 기술 포럼인 SDForum을 비롯하여 오라일리 미디어가 주최한 Ajax Summit, Foocamp 그리고 순수 자발 모임인 Barcamp, Tag Tuesday 등이 있다. 웹2.0 관련 해서 다섯 번에 걸쳐 열린 TechCrunch Party도 인기가 대단하다. Barcamp의 경우, 주말에 캠핑 장이 딸린 한적한 유스호스텔에서 캠핑과 함께 기술 트렌드를 서로 발표하고 나누는 행사이다.
이런 노력과 활동의 저변에는 웹을 웹답게 만드는 꿈(vision)이 깔려 있다. 서로가 가진 것을 공유하고 나누고 정보를 물처럼 흐르게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개중에는 벤처 비즈니스적인 목적을 가진 사람이 있겠지만 그 조차도 실리콘 밸리가 웹을 이끌고 나가게 원동력을 만들어 내고 있다.
특히 올해 2월에 열린 MashupCamp는 ZDnet의 편집장인 데이비드 버린드(David Berlind)가 처음 주도해 시작되었는데 무료로 참가가 가능한 데다가 Mashup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있는 터라 등록 받은 지 며칠 만에 300명이 등록해 버려서 MashupCamp2를 앙코르 해야 할 지경이었다. MashupCamp 역시 여느 밸리 모임처럼 자유 분방하고 활동적이고 생동감이 넘치는 기술 모임이다. 모든 참가자가 30초 스피치를 했는가 하면 즉석에서 발표 프로그램을 짜고 인기 있는 주제가 큰방을 차지 하는 등 형식을 갖추지 않고서도 아이디어와 사람들간의 신뢰와 격려가 넘치는 재미 있는 행사를 만들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런 기술자 모임이 자주 있었으면 한다. 최근 들어 열정이 넘치는 오프 라인 모임이 조금씩 생기기도 했는데, 업계 관계자들이 모이기도 힘들고 모여서도 이야기를 꺼린다. 모임에 나와서 회사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공유하자는 것이다. 열정적인 활동가들에 대한 조소와 비판 보다는 우선 긍정적인 눈으로 봄으로서 서로의 에너지를 더 키워 주었으면 좋겠다. 서로 공유하고 격려함으로써 같이 만들어 나가는 기술 인프라가 키워졌으면 한다.
풍부한 벤처 경험으로 신뢰 쌓은 투자 풍토
실리콘 밸리는 벤처 캐피털이 밀집해 있고 전 세계적으로 IT 벤처 투자가 가장 왕성한 곳이다. 닷컴 붐 이유 한풀 꺾이긴 했지만 여전히 벤처 투자 열기는 식지 않고 있다. 물론 밸리의 벤처 캐피털은 체계적인 자금 지원과 경영 컨설팅, 인맥을 통한 효과적인 라인업 구축 등 인큐베이팅 노하우가 매우 축적되어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자기가 벤처 기업을 만들어 성공한 기업가들이 번 돈의 일부를 벤처 기업에 다시 투자하는 미국 벤처 투자 문화의 특징 때문이다.
자신이 만든 벤처 기업 오드포스트(OddPost)를 야후!닷컴에 매각한 토니 슈나이더(Tony Schneider)는 최근 워드프레스닷컴을 운영하는 오토매틱(Automattic)이라는 신생 벤처 기업 CEO로 자리를 옮기면서 True Ventures라는 벤처 캐피탈 회사에도 투자를 했다. 경영과 자금 양면에서 신생 기업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베이(Ebay)를 설립했던 피에르 오미다이어(Pierre Omidyar)가 4억 달러를 펀딩해서 만든 Omidyar Network의 경우도 대표적이다. 이 투자 회사는 영리/비영리를 떠나 사회적 영향력이 큰 프로젝트를 돕는 “선한 일”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 작년 웹2.0 컨퍼런스에서 많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미 아파치 재단, 크리에이트 커먼즈, FreeBSD재단, 소셜텍스트, 스파이크 소스 등 다양한 곳에 투자를 해오고 있기도 하다.
우리 나라 벤처 캐피털 리스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벤처 1세대들이 머니 게임 하다가 몰락하거나, 전도 유망한 벤처 기업을 인수해서 자기 입맛에 맞게 경영하다가 서비스를 결국 닫아 버리는 사례들을 비추어 볼 때 정말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벤처로 성공하여 거대 포탈에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 넣고 다시 벤처로 돌아가는 벤처 기업가들의 모습에서 참 부러운 행보가 아닐 수 없다. 지금 밸리에서 부는 웹2.0 기반 벤처 스타트업(Start-up) 붐이 실체가 없는 머니 게임이라고 혹평을 할 사람이 분명이 있겠지만 한가지 알아 두어야 하는 점은 마이크로소프트, 썬 마이크로 시스템, 야후, 구글도 모두 밸리의 뿌리 깊은 벤처 투자 문화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안철수 의장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벤처 캐피털리스트 활동에 관심이 있다는 기사를 보면서 참 아름다운 모습이라 생각한 적이 있다. 벤처를 아는 사람들이 아이디어와 혁신을 무기로 하는 벤처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보장하는 풍토가 조성되었으면 한다.
나는 기술 사대주의자는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IT 인프라 선진국이다. 우리가 경험했던 많은 현상들이 외국에서도 지금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쉽게 벨소리를 바꾸고 문자를 보내며 생활의 중심(?)이 된 모바일 환경을 경험하고 있고, DMB, 와이브로(Wibro), 홈 네트웍 등 다른 나라에서는 꿈도 꾸지 못하는 낯선 디지털 환경에 노출되고 있다. 우리의 IT 기술 인프라만 수출할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적인 인프라, 즉 디지털 문화도 수출해야 한다. 우리가 경험한 문화적 자산을 글로벌한 개념으로 확대 재생산할 수 있도록 다양한 아이디어와 혁신이 도출될 수 있는 인프라가 어느 때 보다 시급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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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리 기술자들의 오프라인 모임, 참으로 부럽네요.
웹 2.0이 개방과 참여, 소통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지만 정작 사람은 아직까지 거기에 못 따라가는 듯 합니다.
어떻게 보면 중립적인 위치일 수 있는 학교가 나설 수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개념화에 대한 부분은 연구자의 한사람으로 책임을 통감합니다.
앞으로 GoogleSIG 모임에선 그런 부분에 대한 논의를 해 볼 생각입니다. 즉, 웹 2.0 시대에 어떤 연구주제들이 가능할지 탐색해 볼 것입니다.
한국이 갖고 있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자기 것으로만 만들려는 마음이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느끼는 것이 많은 글이었습니다.
답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또 여쭤보겠습니다. ^^
2월달 앵콜 컨퍼런스에 갔었고, 지난 주 월/화요일엔 코엑스에서 컨퍼런스 및 튜토리얼을 잘 듣고 왔습니다. 튜토리얼 마지막 시간에 AJAX 책을 맨 처음 잡아간 사람입니다. ^^;
적절한 코멘트의 내용이 아닐 수 있습니다만, 그래도 질문을 던져봅니다…
이미 기존 한국의 웹 서비스 중에는 현재 화두가 되고 있는 웹2.0의 의미에 어느정도 맞닿아 있었던 서비스 들이 많았다고 생각됩니다. 북마크 공유 사이트, 사진 공유 사이트, 개인 광고가 가능한 linkprice, ilikeclick 등… 무엇이 다른 건가요? 시간차 공격이 너무 앞선겁니까, 아니면 문화의 차이입니까… 또는 UI가 달라서?
얼마전 UI & 웹 컨퍼런스에 가서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웹 2.0을 띄우면서 개인 미디어를 양산하고 이에 대해 Google에선 Adsence라는 것까지 동원해가며 개인 미디어에 대한 수익 창출까지 도와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이런 식의 개인 미디어를 이용한 마케팅은 예전에도 있어왔는데, 이제 와 2.0이란 화두 아래 다시 Boom-up 시키는 것은 이를 통한 검색 결과의 정확성, 개인 광고를 통한 광고주의 수익을 위한 또 하나의 Boom-up이 아닌가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여러 컨퍼런스를 다녀오면서 윤석찬 팀장님의 말씀이 가장 공감이 많이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 질문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답변을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정승희 / 네.. 말씀 하신 대로 현재 2.0이라고 하는 서비스들의 많은 부분은 1.0 서비스와 유사합니다. 1.0과 2.0을 가늠하는 기준은 바로 그것이 플랫폼인가? 데이터를 기반한 에코 시스템을 만들어 주었는가가 될 것입니다. 애드센스 전에 미국에서도 광고/상품 신디케이션을 해준 곳이 많았습니다. 링크프라이스도 우리 나라에서 처음 시작한 게 아닙니다. 차이라고 하면 중계가 아니라 구글, 아마존과 같이 관련되는 사람이 모두 먹고 살 수 있는 플랫폼(생태계)을 만들었다는 것이죠.
예전 포토 공유, 북마크 공유 같은 경우도 사용자에게 완전한 자유도를 주고 편집 및 리스팅의 권한까지 이양하지는 못했습니다. 문제는 사용자를 믿고 맡기느냐 아니면 조금이라도 간여하고 Data-lockin이 아니라 Policy-lockin을 시도했느냐의 차이라고 볼 수 있겠죠. 만약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있어 자유를 느낀다면 그것이 바로 웹2.0입니다. 그리고 먹고 살수 있는 윈윈 모델이라면 더욱 더 그렇습니다.
선생님의 글이 레포트 쓰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사업을 하고 싶네요. 투자를 하는것도 물론 사업가와 비지니스 모델이 섹쉬해야 가능한 것이지만, 그 VC들의 투자 행태가 부럽기만 합니다.
한국에서 VC를 만난다는 것도 힘들고, 만나더라도 Seed단계에서 투자를 받는다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이니까요. 아쉬울 따름입니다. 저희 회사도 실리콘밸리로 진출을 하려고 합니다만, 현실이 쉽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