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외국인 매니저 체험기

얼마 전 “여러분의 경력에서 ‘개인 실무자(Individual Contributor) – 팀 매니저(Manager) – 임원(Executive) – 학생(Student)’ 등 다양한 역할을 지그재그로 경험하면 좋겠습니다. 저도 26년간 이들 역할 변화를 통해 새롭게 배우고, 도전하고 재충전도 하고 그랬었네요. 인생은 직선이 아니라 파동입니다.”라는 트윗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어떤 분이 “40세가 넘어 개인 실무자로 사는 것이 어떠신가요? 외국계 회사에서 팀장과의 관계는 어떤가요?”라고 질문을 하셨습니다. 우선 외국 회사에서는 나이를 묻지 않는 것이 불문율입니다. 나이와 역할은 아무 상관이 없고, 오로지 업무 역량에 따라 일이 진행되기 때문에 국내 회사 보다는 훨씬 더 수평적입니다.

각 직무마다 업무의 범위와 권한을 좌우하는 ‘레벨(Level)’ 역시 나이 혹은 연차와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저와 같은 레벨인데 나이가 훨씬 어리거나 많은 사람도 있습니다. 매니저 역할 또한 각 개인 실무자들이 좀 더 일을 잘 할 수 있게 도와 주는 일종의 스포츠 선수 에이전트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제가 속한 팀은 국가별로 한두 명이 해당 직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글로벌 팀에 속해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 아주 잠깐을 제외하고, 늘 외국인 매니저와 함께 일했습니다. 외국 회사의 매니저의 역할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7년 반 동안 만났던 외국인 매니저에 대한 에피소드를 한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단, 아래 이야기는 제 경험을 기초로 되어 있으나 약간의 가상 상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A – 워크홀릭이나 세심했던 매니저

저를 채용한 매니저 A는 싱가포르에서 일하는 아시아 지역(APAC) 마케팅 총괄이었습니다. 당시 한국 시장에 마케팅팀을 막 만들고 있었을 때였는데요.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제가 인터뷰에서 영어를 잘하지 못하고 기술 깊이가 낮아서 채용을 반대한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매니저가 영어나 기술은 입사 후 익힐 수 있지만, 기술 업계의 명성은 쉽게 쌓을 수 있는 건 아니니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입사 해 보니, 한국 오피스에 사람 숫자도 적고 일은 많은 상황이어서 뭐든지 닥치는 대로 해야 했습니다. A 역시 아시아 각 나라를 쉬지 않고 출장을 다니면서 꼼꼼하게 일을 챙기는 워크홀릭이었습니다. 어떤 날은 행사를 마치고 그다음 날 행사 스케치 영상을 배포해야 한다고, 밤늦게까지 호텔 한쪽 편에서 영상 편집팀과 앉아서 함께 끝까지 완성했던 기억도 납니다.

입사 초기 팀 동료들과 함께 (2016)

한편으로는 동유럽 국가의 출신이라서 그런지… 매주 일대일 만남(1 on 1)이나 팀 미팅을 할 때는 살뜰하게 챙겨주는 한국식 정(情)이 탑재된 분이었습니다. 미팅 중에 자기 부모님 화상 전화가 오면 팀 회의를 잠시 중단하고 통화하기도 했고요. 언젠가 미팅 중에 일이 너무 많아서 힘이 든다고 영어로 “심적으로 힘들다 (Tired emotionally)”라고 무심코 말했다가, 일 이야기를 바로 중단하고 30분 동안 “몸은 괜찮냐? 워라밸 챙겨라.”라는 잔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영어로 감정적 고갈(Emotional Exhaustion)은 번아웃에 해당하는 심각한 거라고 하더군요.

자신이 챙겨야 할 팀원도 많고 실무적으로 해야 할 일도 엄청나게 많은데도 사람들을 세심하게 잘 관리하던 매니저였습니다. 이 분은 작은 조직에서 맨바닥부터 시작하는 것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바로 몇 년 후 G사로 이직하셨다가, 얼마 전에 또 다른 S사로 옮겨가셨습니다. 본인이 옮길 때마다 인사 치레 같지만 “여기 와라”라고 해 주는 고마운 분입니다. 이런 분을 따라다니면, 조금 힘들기는 해도 항상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B – 나의 능력을 알아봐 준 매니저

지역 조직에 속해 있다가 글로벌 팀으로 옮기면서 만난 매니저 B는 영국에 살면서 유럽 팀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이전 직장에서 오랫동안 임원으로 있다가, 우리 회사에 IC로 입사한 후, 다시 또 매니저가 되신 분입니다. 제일 기억 나는 것은 첫 일대일 만남에서 “아니, 도대체 왜 아직도 L6냐? 바로 프로모션을 준비하자.”라고 한 말이었습니다. 당시 입사 후 3년 정도 지난 시점이라 약간 지치고, 이제 배울 만큼 배웠으니 한국 회사로 돌아갈까 하던 생각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어렵다는 외국 회사 승진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외국 회사는 상위 레벨로 승진하려면, 레벨링 가이드라는 문서에 정의된 각 레벨에 맞는 업무 역량과 성과, 영향력이 필요합니다. 글로벌 조직의 해당 레벨은 한국내에서 한 일만 가지고는 그걸 입증하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상위 레벨에 계신 여러 분들이 이 사람이 해당 레벨의 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해주어야 합니다.

B는 제가 한 일 중에 중요한 결과를 찾아서 잘 포장(?)을 해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CEO가 방한해서 서울 리전 출시 행사 기조연설을 했었는데, 제가 CEO 발표 자료 준비와 실행을 맡았습니다. 당시 CEO를 따라왔던 시니어 스태프의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아냈구요. 글로벌 대학 지원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할 때, 제가 10개가 넘는 한국 대학을 가입시켰던 점도 부각해 주었습니다. B는 프로모션 문서를 쓰는 것부터 글로벌 리더들의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아 주는 것까지 너무 잘 해주었습니다.

그 분은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열심히 승진시켜 준 것으로 유명했던 분입니다. 상위 조직에 왜 우리 일이 중요한지 잘 알리고, 팀원 승진과 조직 성장을 함께 꾀하는 좋은 매니저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외국 회사에 간다면, 자기 매니저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프로모션시켰는지 평판을 미리 알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 C – 매니저 역할이 처음인 매니저

항상 좋은 매니저를 만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회사 규모가 너무 빠르게 성장하다 보니, 투-피자 팀 원칙에 따라 팀이 계속 쪼개졌는데요. 한번은 B가 저에게 매니저를 해 보지 않겠냐고 하시더군요. 매니저가 되면 현업을 계속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냥 실무자로 계속 일을 하고 싶어서, 다른 팀에서 신규 매니저 C를 영입하게 되었습니다.

외국 회사들은 매니저 트랙을 타는 사람들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이 상당히 잘 되어 있는 편입니다. 매니저 역할을 잘하기 위해 조언해주는 분들도 있고요. 하지만, 신규 매니저는 경험이 부족해서 항상 실수를 꼭 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본인이 현업을 계속하려고 한다던가… 팀원의 목표와 성과 측정을 잘하지 못한다던가… 혹은 개인의 성취를 잘 보여줘야 하는데 오히려 팀의 성과에만 집중하든가 하는 것들이죠. (외국 회사라도 초보 매니저의 문제는 어쩔 수 없습니다)

한번은 저의 연간 성과가 꽤 높았는데도 불구하고, 연봉이 동결된 해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알아봤더니, C가 상위 매니저에게 저의 성과에 대한 어필을 잘하지 못했더군요. 제 레벨에서는 해당 지역이 아니라 글로벌 성과를 부각해야 하는데, 아시아 지역팀 성과만 쫓다 보니 그런 부분을 간과한 것이었습니다.

일 년반 만에 C가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바람에 계속 매니저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매니저를 경험이 있던 호주의 동료가 맡기도 하고, IC로 일했던 팀 동료가 새 매니저가 되기도 했습니다. 일 년 사이에 둘 다 또 퇴사해서 ㅠㅠ 글로벌 총괄이 잠시 팀을 맡았다가 현재는 독일에 계신 분이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그분은 오랜 매니저 경험이 있는 분이라 앞으로 팀이 꽤 성장할 것 같습니다.

늘 그렇지만 경험이 부족한 초보 매니저와 일하는 것은 꽤나 리스크가 큰 일입니다. 그래서, 외국 회사에서는 이직을 할 때, 회사 만큼이나 매니저의 평판이 함께 봐야 합니다. 만약 여러 가지 이유로 매니저와 관계가 좋지 못하다면, 빠르게 다른 팀으로 가거나 이직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 실무자 vs. 매니저

외국 회사는 ‘개인 실무자’ 경력 경로(Career Path)와 ‘매니저’ 경력 경로가 아예 다릅니다. 개인 실무자로 승진을 거듭해도 임원 레벨까지 갈 수 있습니다. 다만, 한국 회사에서 더 큰 영향력을 가지려면 팀장-본부장-임원 같은 매니저 트랙을 타야 합니다. 한국 회사의 매니저 트랙은 개인 보다는 조직의 성과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개인 실무자 (IC) vs. 매니저 트랙 – 출처: Level.fyi

앞서 말했지만, 외국 회사의 매니저는 스포츠 선수의 에이전트 같은 역할을 해주어야 합니다. 뒤에서 스타들이 빛나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요. 외국 회사들이 팀보다는 개인 위주로 돌아가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팀의 매니저가 공석 상태일 때, 임시로 그 역할을 해보면서 그 차이를 확실히 느낄 수 있더군요.

여러분의 전체 경력에서 한 번쯤은 팀장 혹은 매니저 경험을 꼭 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내가 실무자가 맞는지 매니저 역할이 맞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저처럼 실무자로 일하는 것이 좋다면, 한국 회사보다는 외국 회사로 이직하는 것도 추천합니다. 물론 좋은 매니저를 만나야 하겠지만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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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생각 (5개)

  1. cirdan 댓글:

    매니저가 얼마나 많은 팀원들을 프로모션 시켰는지에 대한 평판은 생각해본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참고해봐야하는 요소인 것 같다

  2. Jongmin Kim 댓글:

    늘 피가되고 살이되는 윤석찬님의 글

  3. Brian Cheon 댓글:

    Very impressive! 아마존의 장단점이 다양한 매니저를 경험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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