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선을 좌우한 중도층의 재반란

드디어 4년간의 미국판 정치 막장 드라마가 끝이 났습니다. 민주당 바이든과 해리스 후보가 새로운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는 지난 2016년의 예상치 못한 대이변에 이어 미국 민주주의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역사적 장면을 연출하였습니다.

4년간 국내에서는 자기편 이야기에만 귀 기울이고, 비판하는 언론을 가짜 뉴스로 치부하며, 인종 간 분열을 조장하면서, 국제적으로 전 세계의 민주주의 동맹은 위협하면서도 소위 스트롱맨에게 정당성을 주는 모든 것을 비즈니스 거래로만 보는 미국의 대통령은 이제 막을 내렸습니다. (20년전 드라마 ‘심슨 가족’에서 파산한 트럼프 정권을 여성 대통령이 이양 받는 예언이 또 한번 적중했네요.)

4년전 美 대선 결과에 대한 소감글에서 소셜 미디어에 감추어진 여론의 취약성, 중도 미국인들의 저조한 투표로 인한 민주당의 실패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트럼프도 미국 대통령이 되면 달라질 것이라는 일말의 희망도 곧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이번 대선 결과를 바꾼 원인에 대해 좀 다른 관점에서 살펴 보고자 합니다.

■ 사실 1. 가장 높은 투표율과 투표량
이번 미국 대선은 팬데믹 중에서 대면 투표의 위험성 때문인지 사전 투표 및 우편 투표량이 급증했지요. 총 투표 수가 지난 대선의 1억 2천여만명 보다 2천 5백여만명이 늘어났습니다. 양 후보 모두 사상 최대인 7천만표를 넘는 지지표를 얻었고, 양 진영 모두 결집된 현상을 보여주었습니다. (트럼프가 우편 투표에 불법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본인 지지자 상당수도 우편 투표를 했다는 반증입니다.)

지난 12년간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

이전 세 번의 대선 결과를 다시 살펴 보면, 과거 오바마에게 갔던 투표량이 힐러리에게 없었던 것이 민주당의 가장 큰 패착이었는데요. 올해는 5백만이 넘는 표가 다시 바이든에게 향했습니다. 즉, 2016년 당시에 투표률이 저조했던 중도층, 젊은이, 흑인 등 투표 요인이 늘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점입니다. (과열된 투표 열기를 봤을 때 공화당을 지지하는 백인층의 투표 비율은 여전히 크게 변화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 사실 2. 예상치 못한 반란
이번 대선에 큰 역할을 한 것은 다름 아닌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로 넘어갔던 러스트벨트 (위신콘신, 미시간, 펜실베이니아)의 소위 푸른벽 (Blue wall)이 다시 민주당으로 회귀한 것입니다. 이곳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세가 강한 곳이어서 넘어올 것으로 어느 정도 예상됐습니다.

2020년 미국 대선의 전체 주 별 판세도

다만,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이 바로 애리조나와 조지아주 입니다. 두 곳 모두 전통적인 공화당 텃밭입니다. 이 두 곳의 반란은 큰 의미를 가진다고 봅니다.

외견상 조지아 주의 카운티 별 지지세는 2016년과 비교했을 때, 크게 변화가 없습니다. 미국 대부분 지역이 그렇듯이 도시 지역은 민주당이, 농촌 지역은 공화당세가 강합니다. 미국 전체 판세를 보면, 지역 별로 양분된 것처럼 보이지만 각 주의 카운티 별로 보면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은 지역별 거주 계층, 인종, 정치 성향에 따라 매우 다르죠.)

조지아주의 카운티별 정당 지지 (2016년 vs 2020년)

다만, 조지아주의 출구 조사 결과를 보면, 2016년에 비해 본인이 중도층이거나 무당층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바이든 지지율이 완전히 바뀐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한 무당층이 52%였는데, 이번 대선에는 51%가 바이든을 지지했습니다. 자신이 중도층이라고 한 사람은 무려 63%가 바이든을 지지했습니다.

조지아주의 출구 조사 결과 (2016년 vs 2020년)

애리조나주의 출구 조사 역시 똑같은 결과를 보여 줍니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한 무당층이 47%였는데, 이번 대선에서 54%가 바이든을 지지했습니다. 조지아 주 보다도 바이든에 대한 중도층 및 무당층 지지 비율을 더 높습니다.

애리조나주의 출구 조사 결과 (2016년 vs 2020년)

두 개의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 지역에서 중도층의 반란은 러스트 벨트 회기 만큼이나 큰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그만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일반 미국 국민들의 염증이 너무 커서 투표를 안하고는 못 배기게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상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열망이 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들 반란 주 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의 현상이라고 봅니다.)

■ 사실 3. 누가 영향을 주었나?
뿐만 아니라 이들 반란주의 중도층에게 가장 큰 심리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은 두 명이라고 생각합니다. 2년전 세상을 떠난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위원과 지난 5월에 경찰의 체포 과정에서 숨진 조지 플로이드입니다.

당시 매케인 장례식장에서 오랜 친구였던 바이든의 추도사는 모두를 감동시켰습니다. (같은 공화당이지만 매케인과 대립해 왔던 트럼프는 초대받지 못했죠.) 소속 정당은 달랐지만, 두 사람은 정치 인생 초기부터 수십 년 동안 우정을 쌓아왔습니다. 덕분에 매케인의 부인은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아닌 바이든을 지지하기도 했습니다.

존 매케인 장례식장에서 추도사를 한 바이든의 눈물

특히,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은 지난 대선에서 백인들의 레이스에 무관심했던 흑인들의 투표율에 불을 당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덕분에 조지아를 비롯해서 남부 흑인층의 투표 열기는 매우 높았다고 합니다. (남부는 전통적으로 흑인들의 주요 거주지이기도 합니다.)

흑인 기업가이자 언론인인 반 존스 (Van Jones)는 CNN에서 대선 결과가 나온 직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흑인 사회(Black Community)는 COVID로 인해 가장 먼저, 그리고 최악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 나라에는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한 유색 인종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만나지 않는다면, 이 나라에 큰 문제가 있습니다. @VanJones68

오늘은 기쁜 날입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인성을 가지고 좋은 사람이 되라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여러분이 무슬림이라면 이제 대통령이 뭐라고 할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숨을 쉴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 건 조지 플로이드 만이 아니었습니다. 숨을 쉴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VanJones68

바이든 당선 소식을 접한 반 존스의 눈물

이민자로 이루어진 다인종 국가에서 대통령이 매일 트윗으로 분열적인 말을 남발하는 시기를 지낸 분들의 맘을 이해할 만 했습니다. 미국에서 4년간의 실험을 통해 민주주의라는 제도는 언제라도 세심하게 다루지 않으면 탈이 나고 깨어지기 쉽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앞으로 나올 바이든 정부는 정치적 반대 세력을 제거 대상이 아닌 선의의 경쟁자로 보고, 상호 공존하고 타협하는 관용의 문화로 다시 돌아갈 것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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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생각 (2개)

  1. USA 댓글:

    좋은 분석 잘 봤습니다. 라스베가스나 애틀란타에 교육 받은 민주당원이 늘어가고 있는 듯 하네요.

  2. 또람프 댓글:

    미국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게 되어 반갑네요. 이제 매일 쓸데없는 트윗질로 전 세계 분란 일으키는 대통령을 안보게 되니 속이 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