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업계 노동자의 건강성 회복을 위해…

지난주 국내 대표 IT 기업인 네이버의 한 시니어 개발자 한 분이 유명을 달리하였습니다. 한 다리 건너면 알 수 있는 터라 정말 안타깝고, 그 원인이 ‘업무 중 위계에 의한 괴롭힘‘ 정황이 있어 더 슬픕니다. 가장으로서 가족을 두고 떠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을지 짐작조차 못하겠습니다.

이제 편안한 곳에서 쉼을 가지시길 기도하면서 돌아가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울러 네이버는 대표 IT 기업 답게 그 원인에 대해 철저히 진상을 조사하고, 투명하면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 주길 바랍니다.

소위 IT 기업은 수평적이고 열린 소통 문화를 가진 것으로 여겨지고 있어, 이런 일이 발생하면 흔히 소수의 일이라 치부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2018년 이철희 의원이 IT산업노동조합과 함께 IT업계 노동자 503명을 대상으로 노동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0%는 정규직), 업무 스트레스 지수가 ‘심각한 위험 수위’에 있었습니다. 응답자 중 ‘거의 매일 자살을 생각한다’는 응답자가 19명(3.78%), 실제로 ‘최근 1년간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는 응답자는 14명(2.78%)이나 됐습니다.

이는 2017년 보건복지부가 우리나라 일반성인 대상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 발표에서 ‘최근 1년간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다’는 응답이 0.1%임을 고려할 때, 일반인의 약 28배에 달합니다. (어느 직장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냥 넘어가기는 너무 심각합니다.)

과거에도 2016년 한 증권사 모바일 앱개발자, 2017년 한 IT 교육 업체의 웹디자이너, 2018년 한 은행 외주 프로젝트 개발자, 2019년 한 카드사 개발자 등이 업무 스트레스와 과로와 연관되어 유명을 달리하였습니다. 최근에 카카오에서는 사내 동료 평가 과정에서 인간적인 감수성 부족을 보여 주었습니다.

IT 업계는 특성 상 장시간 정신(두뇌) 노동을 합니다.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를 쫓아가야 하는 만큼 그 에너지 소비도 상당합니다. 그런데도, 오래전 부터 어쩔 수 없이 과다 업무를 종용 받거나, 비효율적인 업무 배치와 의사 결정, 불투명한 보상 그리고 위계에 의한 괴롭힘과 높은 업무 스트레스가 만연해 왔습니다. 개발 프로젝트 중 여자친구와 헤어지거나 이혼을 한 개발자, 심지어 일하다가 쓰러졌는데 맹장염인지도 모르고 일하다 30일 후에 확인했다는 이야기를 SW 회사 대표가 자랑스럽게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이제 이런 일을 그만 없어져야 합니다.

1. 제도적으로 보완되길
2019년에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공포되었지만, 실체적 진상 규명이 어렵고 처벌 규정이 없어서 실효성 논란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올해 4월에 관련 규정이 개정되어 비밀리에 객관적인 조사를 명문화 하고, 천만원이하의 과태료 부과 규정도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안이 사내에서 처리되어 피해자 구제가 쉽지 않고, 좁은 IT 업계 특성상 2차 피해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직장갑질 119의 통계에 따르면, 괴롭힘을 신고한 이들 중 71.4%는 피해 사실을 인정받지 못했고, 신고 후 근무 조건의 악화나 따돌림, 해고 등 불리한 처우를 겪었다는 이들도 67.9%였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 3자 전담 노동 기관을 통해 피해자 고충 접수와 지도를 진행하고, 사측이 아니라 노동자편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합니다. 처벌과 배상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해서 쉽게 갑질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여론을 계속해서 환기해야 하는데, 한 동료 분이 올린 청와대 청원에 동참하시기를 권합니다.

2. IT 기업 노조들이 연대하길
지금까지 일부 중소기업, 하도급이 심한 SI업체 등에서 일어나는 일로 생각했지만, 이번에 대표 IT 기업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2018년 부터 네이버, 카카오, 넥슨, 스마일게이트, 안랩에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노조가 만들어졌고, 이후 엑스엘게임즈, 카카오뱅크, 한컴, 웹젠 노조가 결성되었습니다.

그간 IT 기업의 열악한 근로 조건을 개선하고 불투명한 성과 보상 체계를 위해 IT 노조 활동이 큰 성과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IT 노동자들의 정신 건강과 스트레스 지수에 대해 지속적으로 조사하여 그 결과를 공유해 주었으면 하구요. 제도적 보완이 이루어 지기 전에라도, IT 업계 통합 상담 창구 같은 것을 만들어서 어려운 동료들에 대한 지원과 구제 활동을 했으면 합니다. 개별 기업 노조 보다는 공감대가 있는 만큼 함께 한다면 더 큰 시너지가 발휘되지 않을까요.

3. 자신의 건강을 챙기길
제 주변에는 열정이 넘치고, 자신이 만든 제품과 서비스를 자식과 같이 아끼면서, 어떻게 하면 기술로 사회를 좀 더 윤택하게 할까 생각하는 동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번-아웃이 올 정도로 몰입하고, 함께 으쌰으쌰 분위기를 깨기 싫어 자기를 희생하는 일이 흔하게 일어났습니다. IT 분야에서는 주 100시간씩 일해야 한다는 잘못된 성공 공식을 가진 리더가 있다면 더더욱 빠져나오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죠.

이제 스스로를 지켜주세요. 무엇 보다도 제일 중요한 것이 자신의 건강입니다. 회사에서 어려운 고민이 있으시면, 지체 없이 멘토나 전문 상담가를 찾기를 권합니다. 주변에 그런 분들을 있는지 늘 살펴봐 주시구요. 때로는 치열하게 경쟁하고, 토론하는 곳이지만 같은 업계에서 또다시 이런 슬픈 소식을 듣지 않았으면 합니다.

다시 한번 유명을 달리하신 개발자 분의 명복을 빕니다. 함께 위로하고 다시 한번 뜻을 모으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p.s. 마지막으로 최근 해외 IT 기업의 모범 사례랍시고 개발자 직무 레벨, 업무 평가, 승진 제도 등을 회사에 유리하게 변형해서 들여와 시행하거나 하려는 기업에 한 마디하고 싶습니다. 해외 기업의 선진 기업 문화는 충분한 보상과 역할의 폭을 넓히는 인건비 투자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성원들의 동의 없는 끼워맞추기식 문화 수입은 또 다른 피해를 만들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문제에 고민하고 있는 개발자 분들이 있으시면, 저에게 알려 주시면 개인적으로 의견을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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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생각 (9개)

  1. 진우 댓글:

    T모사 이야기가 아직도 이 시대에 회자된다는 게 슬프기만 하네요 청와대 청원 완료 했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 페북이용자 댓글:

    페북 타고 왔어요
    이야기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3. 슬랙에서 댓글:

    slcak에 다른 분이 링크 올려주셔서 읽었습니다.
    꼼꼼하게 생각을 정리해주셔서 저도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4. Seung Tae (Conan) Moon 댓글:

    그만큼 우리나라가 얼마나 노동자 인권을 등한시 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정말 중요한 것은 돈이나 매출 보다도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을 기계나 부품처럼 여기는 시스템이 장기적으로 과연 최적의 결과를 불러오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게 되네요.

    더불어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의 희생이 의미가 없지 않도록 이번 기회를 통해 좀 더 인간다운 환경에서 모두가 일할 수 있게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어요. 진심으로 우리나라가 더 인간다운 사회로 발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5. Hyewon Lee 댓글:

    부디…. ㅜㅠ네이버 남은분들도 마음괜찮으시길 바랍니다ㅜ 넷마블 전동료분들도……

  6. YJ Min 댓글:

    아직도 이런 일이. 정말 마음 아프네요.

  7. Jinseo Jang 댓글:

    소식듣고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더군요. 목소리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차니님

  8. MYEONGJIN KIM 댓글:

    아직 이런일이 있다는게 믿기지가 않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9. 이찬희 댓글:

    Channy 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마지막 p.s. 에도 적극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