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화제를 몰고 오는 이야기꾼 크리스트퍼 놀란 감독의 새로운 영화 ‘테넷(TENET)‘을 보고 왔습니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수백만 관객이 아이맥스를 포함 여러 번 관람할 만한 멋진 작품인데 안타깝네요. (저는 집 앞에 영화관이 있어, 사람이 별로 앞는 조조 시간대에 두번 보았습니다.)
그의 영화는 늘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지만, 테넷은 영화 속 대사처럼 ‘이해하려 하지 말고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그래도 영화를 보기 전 알아 두면 좋을 몇 가지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주의 –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지만, 오히려 영화를 직접 보면서 즐기기에 좋을 내용이라 생각합니다.)
1. 영화를 반으로 접으면 된다
놀란 감독은 그동안 ‘시간 흐름’에 대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창의적인 스토리를 만들어냈습니다. 그의 초기작 ‘메멘토 (2001)‘는 시간 속 사건을 수십개로 쪼개서 흑백과 컬러 영상으로 겹쳐 놓는 방식을 통해 현재에서 과거를 역추적 하는 흐름을 보여주었습니다. (덕분에 진짜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였죠) 그 이후, ‘인셉션 (2010)‘은 꿈 속 시간이 현재 보다 느리게 간다는 점을 착안해서, 꿈을 여러 단계로 나눠 각 꿈의 단계를 교차해서 편집하여 긴장감을 높였습니다. 최근 작품인 ‘인터스텔라 (2014)‘는 중력(블랙홀 주변)에 의해 시간이 상대적으로 변한다는 과학 이론을 기반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교차 편집했고, ‘덩케르크 (2017)‘은 서로 다른 시공간 속에 다른 인물들이 나오다가 갑자기 계속 교차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테넷 역시 시공간을 다루지만, 이전 작들 보다는 훨씬 단순합니다. 복잡하게 시간을 늘리거나 줄이지 않고, 시간의 흐름과 속도는 똑같습니다. 다만, 시간의 흐름을 거꾸로 돌릴 수 있다는 ‘인버전(Inversion)’이라는 상상 속 개념을 소개합니다. 인버전된 물건 혹은 사람은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 영화는 2시간 30분의 런닝 타임을 가지고 있지만, 주인공이 인버전 되기 전과 후로 크게 나뉩니다. (그 사이에 작은 인버전이 몇 번 있지만) 영화의 시간이 크게 한번 흐르고, 다시 한번 거꾸로 흐르고 끝납니다.
그래서, 전반부에는 주인공이 인버전을 경험하기 전까지 주인공의 관점에서만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마치 영화 1917의 롱-테이크 기법을 생각하시면 되는데, 그래서 전반부가 약간 지루할 수 있지만 끈기를 가지고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오페라 극장 – 오슬로 공항 – 탈린 고속도로’ 등에서 벌어지는 액션 장면이 끊임없이 나와주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겠지만요. 후반부는 주인공이 직접 인버전을 경험한 후, 전반부로 다시 거꾸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어떻게 결합되는지, 중간 중간에 뿌려둔 떡밥을 회수하는 마음으로 감상하면 됩니다. 물론 후반부에 스탈스크-12 전투 액션도 충분히 멋집니다.
2. 시간의 흐름, 색과 마스크로 구분하라
후반부에 시간의 역행이 시작되면, 작은 시간/역행이 여러 번 일어납니다. 덕분에 지금 이 장면의 시간이 순행인지 역행인지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이해가 안되기 시작하기 때문에 어려워 질텐데요. 감독은 지금 장면이 시간의 순행인지 역행인지 알 수 있는 단순한 장치를 마련해서 관객의 이해를 돕습니다. 두 가지를 미리 알고 가시면 좋습니다.
첫번째는 색상입니다. 물건이나 사람의 시간을 거꾸로 바꾸는 기계가 현재에 존재합니다. 인버전을 통해 미래에서 인버전한 물자를 과거로 보내 과거에 개입하기 위해 만들어 진 것입니다. (뜬금없이 나타나니 이상하다 생각하지 마세요.) 이 기계는 회전문 처럼 생겼는데, 이를 통과하면 시간의 흐름이 바뀝니다. 이 회전문이 있는 방이 붉은색이면 시간 순행, 푸른 색이면 역행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후반부 스탈스크-12에서 전투씬에서 시간 순행/역행 양방향에서 공격이 진행되는데, 이때도 레드팀은 시간순행 방향으로 공격하고, 블루팀은 시간 역행 방향으로 공격합니다. (각 공격팀의 팔에 레드/블루 뱃지가 있으니, 시간 순행 혹은 역행 공격을 판단하기 쉽습니다.)
두번째는 마스크입니다. 인버전 개념에서는 시간을 역행할 때는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거꾸로 진행되기 때문에 숨을 쉬는 방법도 거꾸로 되어, 산소를 폐가 흡수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산소/이산화탄소를 바꿔주는 마스크를 쓴 사람은 모두 시간 역행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거꾸로 움직이니까 금방 아실 수 있어요. 전반부에서 복면 혹은 마스크 낀 사람이 너무 많이 나와서 누가 시간을 순행하는지 역행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지만, 후반부에서 다시 복기하면서 궁금했던 점이 많이 해소가 됩니다. 뭔가 거꾸로 된 이상한 사건이 벌어진다면, 그건 마스크 쓴 누군가(?)의 소행입니다.
3. 실사 관점에서 영화를 보라
놀란 감독의 영화는 한번 보고 이해하기가 어렵다는게 관객들의 통설입니다. 따라서, 무조건 아이맥스에서 한번 보고, 영화 해설 후기를 다시 보고 일반 극장에서 다시 한번 보는 N차 관람이 필수입니다. 맨 처음 아이맥스 극장에서 봐야하는 이유는 놀란 감독의 영화가 컴퓨터 그래픽을 최소화한 실사로 촬영하기로 유명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영화 속 ‘오페라극장 테러 – 오슬로 공항 비행기 충돌 – 탈린 고속도로 추격 – 스탈스크-12 전투’ 이 네 가지는 아이맥스로 봤을 때 실사 스케일로 멋진 장면을 감상하기에 좋습니다. 영화 시작과 함께 나오는 극장 테러 장면은 실제 에스토니아 탈린에 있는 리모델링한 오페라 하우스에서 재개관 전 수천명의 엑스트라 관객과 함께 촬영했다고 하구요. 오슬로 공항에서 비행기 충돌 장면도 실제 747 비행기를 사용했습니다. 탈린의 고속도로 추격 장면은 에스토니아 정부 허가하에 3주간 고속도로를 봉쇄하고 촬영했다고 합니다. 스탈스크-12 촬영 장소는 캘리포니아 이글 마운틴의 버려진 광산을 빌려 소련 시대의 버려진 도시를 상상하고 실제로 콘크리트 건물들을 만들고 촬영하였습니다.
그 밖에도 인도 뭄바이, 이탈리아 아말피 해변, 덴마크 뢰드비(풍력 발전소) 등 전 세계 로케 촬영으로 코로나 때문에 못한 전 세계를 여행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실제로 어떻게 촬영했는지 위의 메이킹 필름을 보고 영화를 보시면, 돈이 전혀 아깝지 않으실 거에요. (우리가 너무 블루 스크린과 컴퓨터 그래픽에 물들어 있다고 생각이 들더군요.)
4. 주인공은 이름이 없다
주인공인 존 데이비드 워싱톤은 유명 배우 덴젤 워싱턴의 아들입니다. 프로 농구선수를 하다 아빠 찬스 없이 직접 오디션을 봐 캐스팅되었습니다. 영화속 주인공은 이름이 없습니다. 주도자(Protagonist)라는 타이틀만 있구요. 그의 관점에서 영화가 진행됩니다. 왜 그가 이름 없이 주도자인지는 영화를 끝까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주목해 봐야 하는 인물은 주인공과 같이 일하는 ‘닐’ 역을 맡은 로버트 패틴슨입니다. 그는 영화 해리 포터와 불의 잔, 트와일라잇 등에서 스타덤에 올랐고, 더 배트맨 (2021)의 주인공 역을 맡고 있으며, 헐리우드에서 높은 개런티를 받는 배우입니다. 테넷에서 닐은 주인공의 보조역으로 나오지만, 저는 오히려 주인공이 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라는 가장 중요한 대사를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극 중 모든 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리더가 일을 잘 계획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계획을 실제로 잘 실행해 내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닐의 관점에서 영화를 한번 더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개봉한 지 꽤 되었는데, 좋은 영화가 아직 관객이 겨우 백만 정도만 들었다니 좀 안타깝습니다. 코로나 상황이 걱정되긴 하나 영화관들이 방역 수칙을 잘 지키고 있고, 관람 중 마스크를 끼고 붐비지 않는 날과 시간대를 골라 관람하시면 좋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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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저도 보고 왔습니다. 처음엔 어렵더라구요. 사람들이 어렵다고 하니… 근데 그냥 재미있게 봤는데… 이 글 읽으니 또 보고 싶네요.
영화를 반으로 나눠 본다는 개념, 닐의 관점에서 다시 보기 모두 신선한거 같아요.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을 거 같네요.
저도 영화 끝까지 봤는데 엔딩 크레딧은 몰랐네요 ㅎㅎ 그나저나 닐은 어디로 간걸까요. 전 그게 의문…
인터스텔라도 엔딩크레딧이 인물 나온 순이더라구요. 놀란 감동 전매 특허인듯요.
일어날 일이 아닌 일어난 일은 일어난다…라는것은 결국 후대에 의한 선대 멸종계획은 실패하고, 후대의 멸종이 일어난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