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먹은 밥은 늘 체하는 법

대학원 석사 1년차였던 1996년 11월 1일 첫 직장에 입사했습니다. 그러니까 딱 만으로 20년입니다. 스타트업으로 시작해서 포털 사이트 그리고 글로벌 기업으로 회사를 옮기면서 다양한 일을 해 봤고, 오픈 소스 및 개발자 커뮤니티 운영 및 대 정부 기관과 협력도 하고, 정부 연구 개발 사업도 많이 진행해 봤습니다.

이러한 경험 중 한 가지 크게 배운 것은 바로 무엇이든 급하게 하면 항상 탈이 난다는 것입니다. 의도가 순수해도 과정을 무시하는 사람들과 일하면 결과적으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최근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나라 꼴이 말이 아닌 상태로 가고 있는데, 이로 인해 미래 기술을 위한 IT업계의 노력과 스타트업 육성 부분에도 유탄을 맞기 시작했습니다. 아래는 최근에 나온 뉴스 기사들입니다.

예산 7000억 넘는 문화창조융합벨트..실적은 ‘쥐꼬리’
은행권청년창업재단, ‘금융판 미르’ 의혹에 “전·현직 대통령과 연결고리 없어”
‘창조경제’로도 확산되는 최순실 게이트..미래부 ‘타격’ 받나?
미래부, 750억 국가R&D과제 ‘AIRI 몰아주기’ 물거품

이 중에는 정상적인 사업인데 의혹 수준에 머무는 것도 있고, 진행 과정 중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선의를 가지고 참여해서 정직하고 양심적으로 운영하던 IT업계 분들이 본의 아니게 심적 고난을 받기도 하고, 옆에 있는 분들이 덩달아 마음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국내 스타트업계의 산실로 알려진 디캠프와 미래 기술을 위해 만들어진 인공 지능 연구소(AIRI)에 방송이나 뉴스 기사의 무분별한 의혹 제기는 저도 충격적이었습니다. 전국에 산재한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일하시는 IT업계 분들도 꽤 있기 때문에 향후 여파가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들 기관에 둥지를 틀고 있는 많은 신생 스타트업들에게도 영향이 적을 수 없습니다.

돌이켜 보면,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게 된 근본 원인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공통점은 모두 정부가 주도해서 민간 대기업에게 각출하게 해서 만든 재단 혹은 단체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는 것입니다.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도해서 전경련을 통해 대기업으로 부터 각출해 만든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의도가 순수했다 하더라도, 그 과정이 좋지 않다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할 것입니다.

사실 정권 초기에 창조경제혁신센터가 만들어질 당시에도 IT업계 계신 대다수 분들이 기업들이 어쩔 수 없이 참여하는 전시 행정 사업이 될 것이라 전망했습니다. 청와대와 정부가 나서면, 어느 기업들도 거절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니까요.

정치 이슈에 대한 글은 극히 아껴왔지만, 지난 대선 전 대통령 후보께, IT실험실에서 글로벌로이란 글에서 IT 분야의 규제 개혁과 자율적이고 공정한 경쟁 환경 육성에 그렇게 바랬습니다. 그러나, 기업을 줄세우고 정부가 주도하겠다는 과거 회귀식 정책 발상이 만든 참사는 피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제 4년이 지나고, 또 다시 새로운 결정을 해야 하는 대선이 다가오고 있는데 급하게 먹고 체하는 이런 과정이 되풀이되면 안되겠습니다. 저를 포함해 IT업계에 있는 분들도 올바른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미래 지향적인 IT 정책인지 선별해서 스스로 검증해서 참여해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빠르게 청산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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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생각 (2개)

  1. 이승희 댓글:

    에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네요

  2. 조만영 댓글:

    전적으로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