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의 숨은 이야기(1) – 우리나라 웹의 시작

오늘은 현장 리포트가 아닌 과거 리포트를 해볼까 합니다. 올해로 국내에 웹(WWW, World-wide Web)이 소개된지 꼭 10년째가 됩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동안 전 세계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도 엄청난 패러다임의 변화를 격어왔습니다. 실제로 국내에 인터넷이 시작된 것은 20년 전의 이야기지만 우리 실생활에 영향을 가장 크게 미친 웹은 그 짧은 역사 동안 폭발적인 발전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웹이 처음 국내에 소개되고 활용되기 까지 숨겨진 이야기들이 알려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또한, 웹기술이 소개되고 일반화 되는 과정에서 노력한 많은 사람에 대한 노고를 기억하는 사람도 거의 없는 듯 합니다. 저는 몇회에 거쳐 이러한 오래전 이야기를 더듬어 인터넷이 없으면 못사는 현재의 귀감을 삼을까 합니다.

국내 첫 웹서버는 cair.kaist.ac.kr

국내에 처음 웹이 소개된 것은 국내 인터넷의 대표적인 컨퍼런스인 KRNET93 대회에서 당시 포항공대 이재용교수의 강의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국제적으로 유럽입자가속기 연구소(CERN)과 일리노이대 컴퓨팅연구소(NCSA) 등에서 처음 링크 기반의 정보 연결를 위한 서버가 처음 만들어 졌고, 포항공대와 KAIST를 비롯하여 몇 개 기관이 연결된 국내 인터넷 환경에서 소수의 사용자들이 개별적으로 웹환경을 테스트하고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DOS처럼 생긴 유닉스의 환경의 브라우저를 이용하였던 상태였고, NCSA에서 만든 Mosaic이 그래픽 브라우저로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상태였습니다. 지금도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도움말의 정보항목을 보면 이러한 생소한 이름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국내 최초의 웹서버는1993년  해커스랩 김병학 본부장이 재학중 만든 KAIST 인공지능 연구센터(cair.kaist.ac.kr)이었고, 최초의 디렉토리 서비스는 동국대 컴퓨터학과 변정용 교수 연구실의 W3C 국내 웹사이트 모임집이었습니다. 또한 최초의 검색엔진은 나라비젼 김성훈 이사가 만든 대구대학교 까치네이고, 공개된 최초의 웹BBS는충북대 이해원교수가 만든 CBUBBS였습니다.

그밖에 95년에 이르러 온라인 신문사이트였던 중앙일보와 조선일보, 온라인 미술 갤러리를 처음 시도한 다음커뮤니케이션, 온라인 쇼핑사이트인 인터파크와 롯데백화점 등은 당시로서 웹 발전에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던 상업 사이트였습니다. 이들 웹사이트들을 선두로 당시에는 엄청나게 많은 인터넷 비지니스 모델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개중에는 현재에도 살아남아 성공한 회사들도 있지만 무수히 많은 업체들이 98년 말 IMF 위기를 전후로 사라졌습니다. 오랜된 웹사이트들의 초기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이트인 http://www.archive.org 에서도 익숙한 웹사이트 주소를 치면 오랜 첫화면들을 박물관에서 보듯이 감상할 수 있습니다.

메일링리스트로 모이다

초기에는 웹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기술이였기 때문에, 프로그래머나 서버 관리자들이 웹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각종 정보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인터넷 커뮤니티 들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최초의 웹관련 메일링리스트인 www-forum@cair.kaist.ac.kr 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웹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면 모두 가입해서 수많은 사람이 나누는 기술 정보를 여과없이 받을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많이 이용하지 않지만 han.comp.www와 같은 뉴스그룹 역시 매우 중요한 의사 소통 수단이었습니다. 또한, 텍스트 기반 BBS였긴 했지만 kids.kotel.co.kr이나 ara.kaist.ac.kr도 당시로서는 대단히 인기있고 정보를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 였습니다.

이에 반해 웹을 사용하는 유저층은 외국의 학술정보를 검색하고 메일 교환을 하기 위해 모자익이나 넷스케이프 등을 설치 하는 대학의 교수님과 대학원생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들은 유닉스 환경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윈도우즈 환경에서 인터넷을 쓸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열광적이었고, 제가 학교를 다닐때만 해도 서른 분이 넘는 교수님들의 연구실을 직접 찾아가 LAN을 설정해 드리고, 프로그램 사용법을 알려드리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교수님들의 영향으로 학부학생들도 연구실과 학교 전산소 등에서 인터넷과 웹의 사용법을 익히기 시작했고 드디어는 집에서 저속에도 불구하고 전화 모뎀으로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용자들도 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천리안이 PC통신사 최초로 PPP서비스를 제공했는데, 98년에 들어 네오위즈 원클릭을 비롯해 014XY에서 PPP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백여개가 될 정도로 인터넷 사용자가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초고속 인터넷 사용자층은 모두 이 때 형성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누가 웹을 시작했는가?

과거를 비추어 보았을 때, 이렇듯 웹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든 이유는 단지 초고속망의 확충이나 정부의 장려에 따른 것이 아니라, 인터넷이라는 외국 기술을 국내에 흡수하면서 생긴 국내 매니아 층의 형성, 그들의 지식과 문화에 대한 끊임 없는 욕구, 그리고 충족된 정보를 여러 사람과 아낌없이 나누는 공유 정신, 겁낼줄 모르고 인터넷 기술 개발과 비지니스에 몸 바쳤고 이름 없이 사라져간 열정들이 만들어낸 소산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이야기에는 이들의 이야기를 계속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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