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0) 베이스에서 출발하기

예전에 아이들과 유럽 여행을 떠난적이 있습니다. 호텔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층 버튼 중에 “G”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더군요. Ground 즉, 우리로 따지면 1층에 해당되는 층입니다. 설명하기가 좀 난감했습니다. 왜냐하면 G 위에 1층이 표기 되어 있었으니까요. 엄밀히 따지면 0(Zero)층이 되는 건데 쉽게 이해시키기 어려웠습니다.

층을 표기하는 방법은 나라마다 천차만별인데, 흔히 우리 나라 처럼 땅 위에 첫층을 1층이라고 부르는 미국식은 효율성, G층이 있는 영국식은 합리성을 중요시하는 것 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미국이 오래된 나라도 아니고 사실 좌표계의 기준점인 땅을 0으로 삼고, 1까지를 0층으로 보는 건 사실 유럽에서 오래전 부터 사용해 오던 것으로 (수학과 좌표계를 기반한) 서양식 사고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실생활에 0의 개념을 넣는다는 건 대단한 일 같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0)을 수학적 기준점으로 잡고, 그것으로 부터 사고하는 방식을 가르치는 일이니까요.

그에 비하면, 중국을 기반으로 한 동양식 사고에서는 0의 개념은 매우 희미합니다. 한자에서도 영(零/〇)이 있긴 하지만, 숫자 표기 시에도 거의 쓰이지 않습니다.(예: 三十, 百四 등) 또한, (과거 동양권에서 모두 사용했으나) 지금은 우리 나라에서만 쓰이는 태어나자 마자 한살로 치는 ‘세는 나이’도 그 영향이 아닌가 싶어요.

실제 전산학에서 흔히 쓰는 자료구조인 배열의 첫 인덱스는 0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나라 초보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처음에 인덱스의 갯수를 생각할때 헷갈리는게 보통이고, for loop의 변수에 0을 처음에 넣는것도 어색합니다. 우리 딸래미에게 프로그래밍 코드를 가르치다 발견한 사실입니다.

영(0)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세는 방법과 결과는 현저히 달라집니다. 흔히 제로 베이스(zero base)는 ‘어떤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상태, 또는 그런 상태를 가정하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를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거나 출발점으로 되돌아가 검토할 때에 쓰는데요.

새해가 되면 기준점을 맞추어야 할 일이 많죠. 가정, 회사, 사회… 많은 문제들이 ‘백지 상태’에서 출발하면 풀릴 경우가 많습니다. 올해도 기존에 해 왔던 습관과 방식을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도록 해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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