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Amazon CEO인 앤디 제시가 발간하는 2023년 주주들에게 보내는 편지가(한국어 번역본) 공개되었습니다. 이 편지는 매년 전체 사업을 회고하고, 향후 투자 및 계획을 진솔하게 밝히는 문서로 유명합니다. 아주 긴 문서이지만, 아마존 비지니스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참고해 볼만 합니다.
이 편지 내에는 특이하게 아마존의 사업이 돌아가는 공통 원리와 철학을 설명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올해 편지에서 소개된 ‘프리미티브(Primitive) 서비스 전략’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아쉽게도 ‘프리미티브’를 우리 말로 번역하기에 적합한 단어를 찾지 못했습니다. 제가 ‘AWS 클라우드 서비스 이렇게 만들어져요!‘ 라는 글에서 비빔밥에 들어가는 양념 혹은 재료, 레고에서 사용되는 빌딩 블록 같은 것으로 예를 들긴 했는데요.
앤디는 이번 주주 서한에 프리미티브에 대한 정의를 2003년 AWS 클라우드 서비스를 처음 만들 때 작성한 비전 문서를 인용하여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프리미티브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위한 기본 부품 또는 가장 기초적인 수준의 빌딩 블록입니다. 프리미티브는 분할할 수 없으며(기능적으로 둘로 나눌 수 있다면 분할해야 합니다), 한 가지 일만을 잘 수행합니다. 그 자체가 솔루션이 아니라, 다른 것과 함께 사용합니다. 그리고 개발자의 유연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만들어집니다. 우리는 개발자가 사용하는 데 있어, 프리미티브에 많은 제약을 두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개발자의 자유와 혁신을 위해 최적화할 것입니다.”
프리미티브 아이디어는 Amazon 분산 컴퓨팅 선언문(1998)이후 얻은 서비스 기반 모델(이후, 마이크로 서비스 아키텍처로 진화함)에서 얻은 교훈을 통해 만들어졌구요. 이러한 철학을 기반해 만든 AWS는 240여개의 프리미티브 서비스로 확장되었고, 지금까지 꽤 성공적이었죠. 앤디는 이번 서한에서 AWS에서 얻은 프리미티브 서비스 전략을 아마존 전체 사업으로 전개하는 과정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1. 프리미티브 서비스는 속도를 높여 준다
프리미티브 기반 전략을 도입하는 계기는 초창기 아마존닷컴이 외부 회사와 협력하는 과정에서 당시 모놀리식(Monolithic) 아키텍처로 인해 속도와 확장에 큰 제약을 받게 된 경험 때문입니다. 이를 계기로 아마존 닷컴 서비스를 분산 아키텍처와 API를 기반한 서비스 지향 모델로 옮겨 갔으며, AWS가 처음 부터 프리미티브 서비스 구축 방법을 이용하였습니다.
제가 자주 듣는 피드백 중에 AWS 서비스가 너무 많아서 복잡하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프리미티브 기능이 많고 조합하는 자유도가 높다 보니, 작은 기업은 적정 아키텍처를 선택해야 합니다. (막 시작하는 스타트업은 복잡한 아키텍처 보다는 서버 기반의 Amazon Lightsail이나 서버리스 기반의 AWS App Runner 서비스 정도면 충분히 확장 가능하게 운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객의 서비스가 성장해서 더 복잡해지고, 더 규모가 더 커지면, 더 많은 요구 사항이 생기는데, 이때는 원스톱 솔루션 써 왔다면 자유도가 떨어져 더 확장이 불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이 때, 프리미티브를 기반한 서비스 구성 방식은 큰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아마존닷컴 내부에서도 소매, 광고, 디바이스(Alexa, FireTV 등), 프라임 비디오 및 음악, 아마존 고, 드론 배송 서비스 등의 신규 사업의 서비스를 AWS 기반으로 구축해 왔습니다. 그리고, 앤디가 CEO가 된 이후 내부에서 AWS 활용이 더 가속화 되었고, 더 빠르게 신규 사업을 확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온라인 B2B나 B2C 고객 대상 사업을 하는 모든 회사들에게 API 기반의 프리미티브(혹은 마이크로서비스) 서비스 전략이 모두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기능을 API 기반으로 만들어 두면, 사내 개발자들의 서비스 조합 능력 (아이디어 구현 능력)이 올라갑니다. 외부 고객들 역시 높은 자유도로 인해 더 다양한 기능을 실험하거나 구현해 볼 수 있어서 만족도도 높아집니다. 아마존의 프리미티브 서비스 전략은 앞으로 클라우드 기반의 사업을 하려는 회사(특히, SaaS)에게 모범 사례가 될 것입니다.
2. 프리미티브 서비스는 고객 요구를 기반한다
그렇다면, 무슨 기능을 프리미티브로 만들어야 할까요? 앤디는 해결하고자 하는 실제 고객 문제를 선택하는 것이 좋은 ‘나침반’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대부분 회사들은 서비스 기획자의 머리 속에 있거나, 시장에서 뜨는 트렌드 기술이나 경쟁사가 만든 기능을 벤치마크해서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요. 고객이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드어야 합니다. AWS의 경우, 90% 이상의 기능을 고객이 직접 요구하는 기능을 구현합니다.
이 편지에서는 아마존 물류에서 고객의 요구에 따라 어떻게 프리미티브 서비스를 구축해 왔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마존에서 제 3자 셀러 마켓플레이스를 추가하면서, 셀러를 위한 완전 관리형 창고 서비스인 ‘Fulfillment by Amazon‘, 셀러를 위한 완전 관리형 프라임 서비스인 ‘By with Prime‘, 그리고 셀러를 위한 완전 관리형 공급망 서비스인 ‘Supply Chain by Amazon‘ 등을 구축해 왔습니다. Amazon Warehousing and Distribution (물류 창고), Amazon Global Logistics (컨테이너 배송), 가장 최근의 Amazon Shipping (라스트 마일) 기능을 고객의 피드백에 따라서 계속해서 추가해 왔습니다. 마치 온-프레미스나 클라우드 네이티브에서 다양한 AWS 서비스를 조합할 수 있듯이, 셀러의 판매 방식에 따라 물류 방식을 선택하거나 조합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사례로 스토어 비지니스의 당일 주문 처리 시설 (미국 내 58개)은 고객 주문 부터 배송 준비까지 11분내에 이루어지는데, 다양한 식료품 사업 (홀푸드 마켓, 아마존프레시)와 약국 사업 (아마존 파머시)의 구성 요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당일 주문을 위한 또 하나의 프리미티브 기능인 (1시간내) 프라임에어 드론 배송 역시 큰 진전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 이렇게 만들어진 당일 주문 기능을 더 많은 셀러에게도 공개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처럼 고객 요구를 기반한 프리미티브 기능들은 고객에게 꼭 필요하다는 것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고객의 신규 기능 구현 속도 뿐만 아니라 자유도를 높여 줄 수 있습니다.
3. 프리미티브 서비스는 장기 전략이 필요하다
사실, 프리미티브 서비스를 구성하여 고객에게 제대로 서비스를 하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AWS의 경우, 2006년 Amazon S3 (스토리지), EC2 (가상서버)를 시작으로 240여개를 만들 때까지 20년 가까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고객들이 프리미티브를 다 만들어 주는 걸 기다리기 어렵기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원스톱 솔루션을 만들어 제공하는 유혹을 견디기 어렵습니다. 많은 회사들이 복잡한 솔루션으로 바로 건너뛰고 이러한 분야를 ‘적당히’ 결합하여 하나의 솔루션을 만들지만, 이러한 솔루션은 이후 발생하는 더 많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새로운 요구사항이 생겨도 쉽게 진화할 수 없으며, 다른 프로젝트에 재사용할 수도 없습니다.
앤디는 아마존 헬스 서비스를 사례로 들면서, 지난 10년간 다양한 서비스 실험을 했지만, 프리미티브 방식을 사용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다만,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이 전략을 채택하기 시작하여, 응급 치료(아마존 클리닉), 1차 진료(원 메디컬), 약국 서비스 (아마존 파머시) 등으로 나누고, 이를 홀푸드 마켓, 아마존 프레시 등의 기존 당일 배송 빌딩 블록과 결합하기 시작했습니다. 앤디가 CEO가 된 이후, 다양한 아마존 사업에서 프리미티브 서비스 전략이 계속해서 이식되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고무적인 소식입니다.
특히, 앤디는 차세대 프리미티브 빌딩 블록은 ‘생성형 AI’라고 이야기하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아마존은 프리미티브 서비스 전략으로 생성형 AI를 바라보고 있으며, 세 가지 고객 계층(인프라, 개발 도구, 애플리케이션)으로 나누고, 각 계층의 고객을 위한 프리미티브 빌딩 블록을 갖추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즉, 다른 회사들은 직접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들거나 매력적인 생성형 AI 앱 기능에 집중하지만, 아마존은 각 계층의 고객이 빠른 속도로 생성형 AI 기반 서비스를 직접 발명할 수 있는 빌딩 블록을 만들어 제공하는 것이죠.
신 기술이나 트렌드를 쫓는 게 아니라, 그 속의 고객의 요구 사항을 경청하고, 이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빌딩 블록을 찾아서 하나씩 맞춰 나가는 아마존의 전략은 생성형 AI 분야에도 예외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앤디는 아마존 사업이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탄력성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한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합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적인 개선을 하려는 빌더(직원)를 채용하여, 흥미로운 기술보다는 실제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고, 빠른 속도로 실험할 수 있도록 프리미티브 기능 구현에 충실하면서, 대세를 거스르지 않고 더 나은 고객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을 발견하면 이를 바로 수용하고, 실패한 실험에서 배워서 얻은 새로운 지식을 활용하여 다시 시도하는 것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계속해서 변합니다. 그것을 예측하고 준비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따라서,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죠. 앞으로도 아마존이라는 회사의 미래를 바라보실 때, 고객에 집착하는 프리미티브 서비스 전략이라는 큰 틀로 보시면 좋을 것입니다.
※ Disclaimer- 본 글은 개인적인 의견일 뿐 제가 재직했거나 하고 있는 기업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거나 그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확인 및 개인 투자의 판단에 대해서는 독자 개인의 책임에 있으며, 상업적 활용 및 뉴스 매체의 인용 역시 금지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채널은 광고를 비롯 어떠한 수익도 창출하지 않습니다. (The opinions expressed here are my own and do not necessarily represent those of current or past employers. Please note that you are solely responsible for your judgment on checking facts for your investments and prohibit your citations as commercial content or news sources. This channel does not monetize via any advertis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