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 11월 8일(수) 소천하신 저의 어머니 故 장사순 사모님의 추모의 마음을 담아 고인이 생전에 작성하신 회고록을 공유합니다. 함께 추모에 동참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나의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면 어떻게 그 힘든 시간을 지나왔는지 하나님의 섭리가 놀랍다. 인생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죽음의 땅이 된 북한을 나오지도 못했을 것이고, 배고프고 의지할 곳 하나 없던 땅에서 주님을 만나고 사랑하는 가족을 섬길 수 있는 소망을 주셨다.
평안남도 중화읍에서 아버지(장문겸)와 어머니(현상녀)의 2남3녀 중 넷째로 태어난 나는 당시로서는 나름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 어머니를 닮아서인지 바지런함이 몸에 배어 있어 12세 되던 때에 벌써 밀을 갈아서 칼국수, 수제비 등을 만들어 7명의 가족의 식사를 담당하기도 했다. 어떤 때는 물동이를 이고 물을 길러 오다가 자신감이 넘쳐 손을 놓고 오다가 떨어뜨려 애써 이고 온 물도 솟고, 물동이도 깨뜨리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부모님은 혼을 내지 않고 다치지는 않았는지 더 걱정을 하시기까지 하셨다.
◼ 모든 것을 버리고 남쪽으로 향하다
일제에서 해방이 된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북한 땅에 공산당이 들어오고, 우리 가족은 지주라는 이름하에 핍박을 받았다. 1950년 되던 해 6.25 사변이 일어난 후, 모든 것을 버리고 10월15일 오빠(장덕순)와 함께 북한에서 월남하게 되었다.내려오던 중 사촌오빠들과 황해도 사리원에서 극적으로 만나 개성에서 서울로 오게 되었다. 우연히 피난민을 수용하던 서울 영락교회에서 5일간 머무르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돌보심이었다.
용산에 계신 고모부 동생 집에 잠시 유숙을 하다가 전쟁이 격화되어 함께 피난 온 오빠들은 모두 군에 입대하고 15세 되던 해 혼자서 대전과 충남 예산에 피난민들이 모여 있는 수용소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 수원에서 극적으로 친오빠와 재회하게 되면서 경기도 포천에 화전 밭을 일구며 생활을 했지만 더욱더 어려워져 서울로 다시 돌아가 연사 공장을 하던 고모 댁에 다시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곳에서 20명의 공장 직원의 식사를 매일 담당하여 그곳에서 6년간 생활하게 되었다.
겨울에는 찬물에 밥을 짓느라 손, 발이 얼어 동상이 걸리기 일쑤였다. 이렇게 힘들게 일했지만 대가는 없었고 돈 한 푼 없이 견딜 수 없어서 고모 집을 나와 대구로 향하게 되었다. 전쟁통에 월남하여 집도 절도 없었던 그 때를 생각해 보면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어찌 살았는지 싶다.
◼ 배짱으로 주의 사역에 나서다
남한으로 피난 온 후에 나는 늘 성경공부를 할 수 있는 학교를 다니기를 소망하고 있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대구 침산동 천일교회 박경남목사님을 만나게 되어 우여곡절 끝에 목사님의 추천으로 경북고등성경학교(후, 수도고등성경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돈 한 푼 없던 내가 성경학교에 가서 ‘돈은 벌어서 나중에 낼 테니 공부를 하게 해 달라’고 말하고 공부를 시작한 배짱 좋은 여학생이었다. 나는 틈틈이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는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털실로 스웨터를 짜서 내다 팔아 돈을 벌어 3년간의 공부를 마치고 1961년 3월에 졸업을 하게 되었다.
여전도사로서 첫 목회지였던 경북 영양군 청기면 청기교회로 부임하여 2년간 목회를 하고, 그 이후 경남 지전교회, 송백교회, 이책교회에 등에서 목회 사역을 계속 하였다. 그러던 중 나의 성경학교 스승이셨던 Lillian Ross(한국명 노일연) 선교사님으로부터 하나의 전갈을 받았다.

◼ 목회자의 사모로 부르심
젊은 사모님이 갑자기 소천하시고 4남2녀를 두고 시골에서 목회를 하시고 계시는 한 전도사님의 대한 안타까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나는 그 이야기에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내가 그곳으로 가서 전도사님의 사역을 도우며 자녀를 양육 해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그 결심을 듣게 된 나의 지인들은 절대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하지만 배짱하나로 살아온 나는 왠지 반대를 뿌리치고 결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굳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주님이 주신 마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1982년 늦가을 봉화 산골 윤전도사님 가정에 처음 온 나는 4남2녀의 자녀가 얼마나 사랑스러워 보였는지 모른다. 이 마음 또한 주님이 나에게 주신 마음이라 굳게 믿는다.
처녀의 몸으로 대가족인 전도사님 가정에 와서 함께 생활하게 되었지만 그때 당시 월급이 월17만원 밖에 되지 않는 시골 목회자라 6남매를 그것만으로 기르며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다행히 어린 자녀들의 성품은 매우 착하고 공부도 모두 잘하는 편이었으며 새 엄마인 나를 잘 따라 주었다. 그러니 나도 저절로 힘이 날 수 밖에 없었다.
남편의 목회 사역을 도우면서도 어릴 적 경험을 되살려 시골에서 나는 교인들의 농산물들을 이고, 지고, 들고서 대구/부산/서울을 오가며 지인들에게 판매해서 조금씩 남는 돈을 벌어 자녀 양육하는데 사용하였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지금은 자녀들이 모두 잘 성장하여 가정을 이루고 하나님의 귀한 일꾼으로 장성하여 나에게 제일 감사한 부분이기도 하다.
◼ 더 큰 소망을 이루어 주시다
어렵고 힘든 시골 목회가운데서도 남편은 늦게나마 신학 공부에 매진하여 셋째 아들과 함께 목사안수를 받았다. 화천교회에서 25년간 섬기고 갈산교회, 송내교회 그리고 마지막 신라교회에서 시무하다가 목사 은퇴를 하시게 되었다.
이제 돌이켜 보면 나의 삶들은 모두 주님께서 인도하심에 따라 지내왔음을 고백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멋진 목회자의 가정을 만나게 하셔서 그 자녀들과 함께 힘든 가운데서도 주님의 사랑과 축복도 경험 하였고, 나의 수고로움을 통해 귀한 주님의 일꾼들을 양육함 또한 나에게 가장 보람된 삶이기도 하다.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나의 노후를 사랑하는 남편 윤목사님과 사랑하는 자녀들과 함께 하게 하심을 감사드리며 지금까지 부족한 나를 늘 사역의 동역자로 생각하는 윤목사님께 사역의 은퇴의 길에서 축하의 마음을 전하며 쑥스럽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제 나는 윤목사님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남은 여생을 이웃들과 주님의 사랑을 나누고 자녀들과의 행복한 나날을 꿈꾸며 함께 건강한 주님의 사역자로의 삶을 계속하기를 기도한다.
장사순사모는 평양 태생으로 한국전쟁 중 월남하여 경북고등성경학교를 졸업하고, 청기교회, 지전교회, 송백교회, 이책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하다 하나님의 뜻안에서 윤덕중 목사와 결혼하여 6남매를 믿음으로 길러내고 사모로서 함께 사역해 왔다.
저희 어머니는 아버지의 목사 은퇴 후, 고향 마을에서 아버지와 함께 평안히 노년을 보내셨습니다.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당뇨병이나 고혈압 같은 기저 질환 없이 건강하시던 중, 올해 5월에 갑자기 황달 등의 증세를 보여, 급성 간염으로 입원하시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약 6개월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시면서, 점점 기력이 쇠하시고, 건강도 급속도로 안 좋아지셨습니다. 퇴원하고 집에 가고 싶다는 어머니의 유지에 따라, 고향 집에 다시 돌아와 계시다가, 11월 8일 밤 11시경에 영면하셨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와병 중에 고통의 시간을 겪으셨으나, 지금은 천국에서 영원히 안식하시길 기원합니다.
Update – 저의 어머니 장례에 추모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장지: 이천에덴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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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대단하신 어른이셨네요 차니님도 힘내시길…
삼가 故人의 冥福을 빕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드라마 같은 삶이셨군요. 하나님 안에서 인생의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존엄을 지키고 사랑을 나누신 삶에 존경을 보냅니다.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차니님께서 남기신 회고의 내용을 보시면서 떠나실 어머님의 여행길에 편안함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사모님께서 남기신 지나온 소망의 시간 글 감명깊게 잘 읽었습니다. 사모님의 소망과 만드신 신앙과 정신이 자손 대대로 전해지길 바래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머님의 회고록을 이렇게 블로그에 올리시는 석찬님을돌아가신 어머니께서도 자랑스럽고 고마워하실 것 같습니다.
모범적인 삶을 사셨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평안히 주님 품에 안기시길 기도합니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평안히 주님 품으로 안기시길 기도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울러 유족 모두의 평안과 건강을 기원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삼가 조의를 표하며 주님의 위로가 함께하길 기도하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슬픈 소식을 접하게 되어 조의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왔다가 어머님의 회고록 감명깊게 잘 읽었습니다. 삼가 조의를 표하오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석찬님께도 먼곳에서나마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려운 시기 신념으로 이겨내신 어머님의 회고록이 인상 깊네요. 편안히 주님 곁으로 가실 수 있도록 기도 드리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타인을 위한 위대한 삶을 사셨네요. 떠나신 분과 남으신 분들 모두에게 평안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어머님께서 훌륭한 삶을 사셨네요. 평안히 주님의 품에 안기시길 기도드리고, 석찬님께도 위로의 마음을 멀리서나마 전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졌어요. 어머님의 미소가 글보다 더 강력합니다. 이런 위대한 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