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웹디자이너에게 고함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얼굴 사진이 한 페이지에 걸쳐 커다랗게 나오는 형식의 전문지 인터뷰를 두번 정도 가져본 적이 있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공교롭게도 인터뷰를 요청한 매체들은 모두 웹디자이너들이 주로 구독하는 디자인 전문지들이었다.

한번은 웹서비스 개발 책임을 맡고 있었을 때였고, 다른 한번은 오픈소스 커뮤니티 개발자의 입장에서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매체의 성격 상 인터뷰에서 디자이너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2000년 7월의 첫번째 인터뷰에서 담당 기자는 웹디자이너와 같이 일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본인의 대답은 이랬다.

인터넷 개발 환경은 기획과 디자인, 그리고 프로그램 개발이 상호 보완적인 협동 체제라는 데 있기 때문에 많은 오프라인 기획자들과 디자이너들이 이러한 환경에 바로 적응하지 못한다. 그래서 기술에 관한 한 남의 영역을 조금은 알아야 하고 회의도 많이 해야 하는데, 정해진 시간 내에 자기에게 주어진 일만 하겠다는 디자이너들과 가장 일하기 힘들다.

국내 웹디자이너에게 바라는 바를 물었을 때도 엔지니어 출신이라서 그런지 디자이너들이 간단한 프로그래밍은 익히는 게 좋다고 답했다. 가져다 붙이기 식 자바 스크립트 개발이 아닌 프로그램을 읽을 줄 아는 웹디자이너라면 아주 훌륭한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후 4년 뒤인 두번째 인터뷰를 가졌을 당시에는 국내 웹 환경에 대해 좀 더 진지한 고민을 하는 때였다. 바로 그 동안 웹 표준 기술이 무시되고 오로지 사용자 편의성과 비주얼만 강조되는 웹 제작 환경에 대한 이야기였다.

2000년 당시 내가 같이 일했던 웹디자이너들은 소위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림을 그리면 그걸 잘라다가 붙이는 작업을 개발자가 해줬다. 아니면 격자 모양으로 잘라서 테이블에 넣어 주던가. 허나 이해할 만도 한 것이 웹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웹개발자도 적응하기 힘든데, 비 전산 전공자인 디자이너들이 HTML이나 자바 스크립트 같은 것을 이해하고 배우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후 수많은 웹디자인 학원들과 교육 과정들이 생기고 웬만한 대학에서도 웹디자인을 가르치는 현재는 상황이 더 나아졌는가? 개선됐다기 보다는 더 꼬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2004년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이 800여개의 공공 기관 및 주요 웹사이트를 조사해 본 결과, 파이어폭스, 사파리, 오페라 같은 비 인터넷 익스플로러 브라우저에서 거의 모두 문제를 발생시켰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나라 웹 환경이 현실적으로 한 회사의 플랫폼에 종속돼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운영하는 오픈소스 커뮤니티 내의 웹 표준 게시판에도 비 IE 브라우저에서 생기는 문제가 계속해서 답지되고 있다. 그 중 대부분이 웹 표준을 지키도록 수정하면 모든 브라우저에서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게다가, 계속 반복되는 실수들이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데에 대한 모든 책임을 웹디자이너들에게 돌리고 싶지는 않다. 가장 큰 원인은 시간과 비용의 속박을 씌워 값싸고 빠르게 화려한 결과물만을 내놓기를 원하는 이 땅의 무수히 많은 ‘갑’에게 있다.

현재, 많은 웹디자이너와 HTML 코더라고 불리는 UI 개발자는 프리랜서 또는 계약직으로 몰리면서 웹 콘텐츠를 생산하는 컨베이어 벨트의 최하위에 있는 노동자인 것이 현실이다. 대기업 홈페이지 구축을 수주하는 중견 웹에이전시 업체들도 현업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상 재교육과 자기 개발에 시간을 들이기도 쉽지 않고, 학원이나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육의 수준상 웹 표준 기술에 대한 습득 자체가 쉽지 않다는 부분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웹디자이너’인 것은 바로 ‘웹’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게 빠진다면 PC로 작업하는 일반 출판물이나 CD-ROM 타이틀 디자인 같은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웹이 있다는 이야기는 텍스트, 이미지, 멀티미디어 데이터들을 웹 기술이라는 플랫폼 위에 모든 사람이 향유할 수 있는 서비스 기반을 만든다는 것이다. 즉, 최적화된 비용으로 빠른 반응 속도로 접근성 높은 사이트를 만드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시작점에 웹디자이너들이 서 있다. 물건 사러 오는 사람들에게 용량 큰 이미지와 플래시로 첫화면을 만들면 빡빡하게 닫겨진 가게문을 여는 것 같은 인상을 줄 것이며, 아무리 초고속 환경이라 하더라도 서버와 회선에 대한 비용 증가는 불 보듯 뻔하다. 비 표준 기반의 접근성 낮은 웹사이트는 ‘갈’씨 성을 가진 사람은 물건을 못 사도록 하는 것과 같다.

웹디자이너는 웹 코딩 기술을 사용해서 최소한의 자원으로 자신이 원하는 효과를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하며, 모든 사람이 웹 컨텐츠를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웹디자이너들과 UI 개발자들의 자기 개발을 더욱 요구되는 이유이다.

최근 해외 웹 디자인 동향을 보면 XHTML, CSS, XML 같은 웹 표준 기법을 통한 효율적인 웹 컨텐츠 제작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기존의 테이블 레이아웃(Table Layout)을 대체하는 CSS 레이아웃 방식과 소수 사용자 및 기계가 이해할 수 있는 접근성 향상, ActiveX 같은 플러그인이 아닌 XML과 자바스크립트를 통한 인터액티브한 효율적인 컨텐츠 표현 등이 주요 주제가 되고 있다.

HTML을 결과를 도출해 내기 위한 도구로서가 아니라 컨텐츠 구조와 표현을 분리함으로서 더 의미있고 이해 가능한 웹 본연으로 되돌리는 추세라는 것이다. Yahoo!를 비롯하여 MSN, ABC 뉴스 등 많은 웹사이트들이 첫화면 레이아웃을 CSS 박스모델로 이미 바꾸었고, G메일이나 구글 맵 등에서 XML, HTTP와 자바스크립트를 이용한 모든 브라우저에서 표시되는 깔끔하고 놀랄만한 서비스를 선보인바 있다.

미국 연방 재활법 508조는 장애인 및 소수 브라우저 사용자를 위한 접근성이 확보되지 않은 경우, 정부 조달을 금지하는 강력한 법 조항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이 모든 것이 많은 토론과 경험이 축적 되어 나타나는 최근의 추세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웹 디자이너에게 사용성(Usability)와 비주얼(Visual)만을 요구해온 수동적인 생산 방식에서 브라우저에 표현하는 표준 프론트(Front) 표현 기술에도 정통한 사람이 각광받는 시대가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웹 표준 기술과 고급 스크립트 기술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선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을 기울이는 게 중요하다. 웹디자이너로서 이런 흐름의 변화가 있다는 점을 알지 못한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최근 모 잡지의 설문 조사에서 대부분 웹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 웹 표준을 기반한 파이어폭스라는 브라우저의 등장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인터넷이 좋은 이유가 조금의 노력만 기울인다면 현재 추세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많은 자료들이 널려 있다는 것이다. 웹 표준 기구의 스펙, 웹디자인 관련 컨퍼런스 자료, 대가들의 블로그 그리고 각종 IT관련 뉴스 등을 살펴 보면 된다.

디자인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좀 더 웹 표준 기술 안팎에 동향에 관심을 기울이고 배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분야에서 우수한 인재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내 분야가 아니야’라는 생각을 벗어나서 내가 왜 웹디자이너이며 웹이 무엇인가를 다시 되짚어 주길 바란다. 이 땅의 웹디자이너에게 다시 한번 기대를 걸면서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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