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 킹, I Have A Dream 연설 50주년

오늘이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의 유명한 I Have A Dream 연설 50주년 되는 날이군요. 지난 2월에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링컨미모리얼 앞에 있던 I Have A Dream이라는 킹 목사의 연설 현장에서 감격했었는데요.

동영상과 연설문을 읽어 보면, 그 날 감동을 다시 느낄 수가 있습니다.

연설문 출처: 미국의 명연설 http://infopedia.usembassy.or.kr/KOR/_f_0211.html (주한 미국 대사관)

50주년 기념식: NBC 뉴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마틴 루터 킹(1963)

우리 역사에서 자유를 위한 가장 훌륭한 시위가 있던 날로 기록될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과 함께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백년 전, 한 위대한 미국인이 노예해방령에 서명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이 바로 그 상징적인 자리입니다. 그 중대한 선언은 불의의 불길에 시들어가고 있던 수백만 흑인 노예들에게 희망의 횃불로 다가왔습니다. 그 선언은 오랜 노예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즐겁고 새로운 날들의 시작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백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흑인들이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극적인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백년 후에도 흑인들은 여전히 인종 차별이라는 속박과 굴레 속에서 비참하고 불우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백년 후에도 흑인들은, 이 거대한 물질적 풍요의 바다 한가운데 있는 빈곤 의 섬에서 외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백년 후에도 흑인들은 여전히 미국 사회의 한 귀퉁이에서 고달프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이 끔찍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 이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국가로부터 받은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야 할 시기에 온 것입니다. 미국의 건설자들이 헌법과 독립선언문에 훌륭한 표현들을 써넣을 때, 그들은 모든 미국인들을 상속자로 둔 약속어음에 사인을 했습니다. 그 어음은 모든 인간에게 – 그렇습니다 흑인과 백인 모두 말입니다 – 삶과 자유, 행복 추구권이란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보장한다고 약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이, 시민들의 피부색에 관한 한, 이 약속어음이 보장하는 바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 신성한 의무를 존중하지 않고, 미국은 흑인들에게 부도수표를 주었습니다. 이 수표는 “자금이 부족함”이란 도장이 찍혀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의의 은행이 파산했다는 말을 거부합니다. 우리는 이 나라에 기회의 금고에 자금이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거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이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야 할 때에 다다랐습니다.

이 수표는 우리가 요구하는 바에 따라 충분한 자유와 정의에 의한 보호를 우리에게 줄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의 긴박성을 미국인들에게 일깨우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선 냉정을 되찾으라는 사치를 누릴 여유도, 점진주의라는 이름의 진정제를 먹을 시간도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민주주의의 약속을 실현할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어둡고 외진 차별의 계곡에서 벗어나 햇살 환히 비치는 인종간의 정의의 길에 들어설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하느님의 모든 자손들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줄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인종간의 불의라는 모래(quicksands) 위에서 우리의 나라를 건져 단단한 반석 위로 올라서야 할 때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정의를 모든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실현시킬 때입니다.

지금 이 순간의 긴박성을 간과한다면, 그것은 이 나라에 치명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흑인들의 정당한 불만이 표출되는 이 땡볕 속의 여름은 자유와 평등의 상쾌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찾아올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1963년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만일 이 나라가 다시 예전 상태로 돌아간다면, 흑인들이 좀 진정을 하고 자족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친 방식으로 미몽에서 깨게 될 것입니다. 흑인들이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부여받기 전에는 미국에 휴식도 평온도 없을 것입니다. 정의가 실현되는 밝은 날들이 오기 전까지는 이 나라의 기반을 뒤흔드는 폭동의 소용돌이가 계속될 것입니다.

하지만 정의의 궁전으로 이르는 출발점(warm threshold)에 선 여러분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정당한 위치를 찾을 때까지는 나쁜 행동을 해서 죄인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점입니다. 자유를 향한 갈증을 비탄과 증오로 가득 찬 잔을 들이키는 것으로 달래려 하지 맙시다.

긍지와 원칙이 있는 높은 곳을 향한 투쟁을 영원히 계속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창의적인 항거가 폭력으로 변질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또 다시, 우리의 힘이 영혼의 힘과 맞닿을 수 있는 저 높은 곳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우리 흑인 사회를 휩쓸고 있는 저 새롭고도 훌륭한 투쟁 정신이 백인들의 불신을 받는 데로 이어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서 있는 백인들이 증명하듯이, 우리의 많은 백인 동지들은 그들의 운명이 우리의 운명과 이어져 있으며, 그들의 자유가 우리의 자유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는 홀로 걸어갈 수는 없습니다.

걸어나가면서, 이제 우리는 언제나 더욱 전진해야 한다는 맹세를 해야 합니다. 되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인권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언제야 만족하겠는가?”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흑인들이 경찰의 무지막지한 폭력의 공포에 희생되고 있는 한, 우리에게 만족이란 없습니다. 우리(흑인)들이 여행하다가 피곤에 지쳤을 때, 고속도로 근처의 여관(모텔)이나 시내의 호텔에 잠자리를 얻을 수 없는 한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흑인이 이주한다는 것이, 고작 작은 흑인 게토에서 더 큰 게토로 가는 것이 전부일 때, 우리는 만족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백인 전용”이라는 간판이 우리의 아이들이 자존에 상처를 주고, 긍지를 강탈당하는 한 우리는 절대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미시시피의 흑인들이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뉴욕의 흑인들이 마땅히 투표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한,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안 됩니다. 우리는 결코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아모스 5:24), 의로움이 힘차고 도도한 물결이 될 때까지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들 중 어떤 사람이 재판이나 간난(艱難)을 겪다가 여기 오게 되었다는 것에 무신경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중 일부는 좁은 옥중을 나와 신선한 공기를 마신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중 일부는 자유를 추구하다가 박해라는 폭풍에 남겨져 시달리고, 경찰의 야만스런 폭력이란 강풍에 고통받는 땅에서 오기도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그 새로운(창의적인) 방식으로 다가오는 갖가지 고통을 겪는 데는 베테랑들입니다. 그런 고난들이 곧 속죄를 하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계속 일하십시오.

미시시피로 돌아가십시오. 앨라배마로, 사우스 캐롤라이나로, 조지아로, 루이지애나로, 우리 북부 도시 속의 슬럼으로, 흑인 거주지(게토)로 돌아가십시오. 상황이 어떻게든 더 나아질 수 있으며, 나아지고 만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더이상 우리를 절망의 계곡에서 뒹굴게 두지 맙시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나의 벗들이여, – 어제와 오늘 우리가 고난과 마주할 지라도, 나는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은 아메리칸 드림에 깊이 뿌리 내린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진정한 의미를 신조로 살아가게 되는 날이 솟아오리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 옛 노예의 후손들과 옛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불의의 열기에, 억압의 열기에 신음하는 저 미시시피주 마저도, 자유와 평등의 오아시스로 변할 것이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아이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오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사악한 인종주의가 판을 치고, 주지사가 늘상 연방 정부의 조처를 가로막을(interposition)수 있다느니, 연방법의 실시를 거부(nullification)한다는 말만 반복하는 저 아래 앨라배마주가, 바로 그 알라배마 주가 언젠가 변하여, 흑인 소년 흑인 소녀들이 어린 백인 소년 백인 소녀들과 손을 잡고 형제자매로서 함께 걸어갈 수 있게 되는 꿈입니다.

오늘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어느 날 모든 계곡이 높이 솟아오르고, 모든 언덕과 산은 낮아지며, 거친 곳은 평평해지고, 굽은 곳은 곧게 펴지고, 하느님의 영광이 나타나 모든 사람들이 함께 그 광경을 지켜보는 꿈입니다. (이사야 42:15~16)

이것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이것이 제가 남부로 돌아갈 때 가지고 가는 신념입니다. 이런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절망의 산을 개척하여 희망의 돌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희망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이 나라의 이 소란스러운 불협화음을 형제애로 가득 찬 심포니(교향곡)로 변화 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신념이 있기에, 우리는 함께 일하고, 함께 기도하며, 함께 투쟁하고, 함께 감옥에 가며, 함께 자유를 위해 싸울 수 있으며 우리가 언젠가 자유로워 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날은 하나님의 모든 자식들이 새로운 의미로 노래부를 수 있는 날이 될 것입니다.

『나의 조국, 그분의 땅, 달콤한 자유의 땅, 나 그분께 노래부르리. 나의 부모가 살다 죽은 땅, 필그림 개척자들의 자부심이 있는 땅, 모든 산골짜기로부터, 자유가 울려퍼지게 하라.』

그리고 미국이 위대한 국가가 되기 위해서, 이것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유가 뉴햄프셔의 거대한 언덕에서 울려 퍼지게 합시다.
자유가 뉴욕의 큰 산에서 울려 퍼지게 합시다.
자유가 펜실베이니아의 앨러게니산맥에서 울려 퍼지게 합시다!
콜로라도의 눈 덮인 로키산맥에서도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캘리포니아의 굽이진 산에서도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뿐만 아니라, 조지아의 스톤 산에서도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테네시의 룩아웃산에서도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미시시피의 모든 언덕에서도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모든 산으로부터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그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할 때, 모든 마을, 모든 부락으로부터, 모든 주와 도시로부터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할 때, 우리는 더 빨리 그 날을 향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 흑인이건 백인이건, 유태인이건 비유태인이건, 개신교도이건 가톨릭교도이건, 손을 잡고, 옛 흑인 영가를 함께 부르는 그 날 말입니다.

『드디어 자유가, 드디어 자유가! 전능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마침내 자유로워졌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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