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목사님의 설교 중에 아주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현대 사회는 결과가 선하면 그 과정이 악하다고 할찌라도 선한 것으로 귀결한다는 것이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악한 방법을 쓰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물음에 대해 우리의 대답이 무엇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물음은 과연 악을 징벌하기 위해 전쟁이 정당한가? 연쇄 살인범을 처벌하기 위해 사형이 정당한가? 혹은 사회 법질서를 지키기 위해 과잉 진압이 정당한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런 물음에 대한 확실한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못박은 사람들은 정당하지 못한 악한 방법으로 자신의 뜻을 관철했다는 점을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이죠.

목사님이 든 예제 중에는 우리가 “과정의 중요성”에 대해 간과했던 것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경쟁에서 승리만이 선하다고 가르쳐온 우리 전세대와 우리 세대를 통해 나온 결과가 바로 교육과 가정의 붕괴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동영상을 한번 보세요. 길지 않습니다.)

80-90년대 대학을 다닌 지금의 기성 세대들은 과도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전 세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 속에서 가정의 중요성과 사회적 배려의 교육은 없었습니다. 오로지 경쟁에 이기는 방법만 습득한 것이죠. 그 결과 똑같은 일이 우리 자녀 세대에도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제 딸이 태어난 해(2000년)의 아이들의 숫자는 제 나이 또래 90만명의 딱 반인 45만명입니다. 경쟁 없이도 충분히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숫자인데도 아이들은 과거 보다 더 치열한 사교육 열풍에 휩쓸려 있는 실정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혹은 살 집이라도 하나 얻기 위해 거품을 믿고 부동산에 뛰어들고…

청년 실업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어도 이미 주류에 편성해 일자리를 꿰어 차고 있는 40-50대 베이비붐 세대는 경쟁으로 뺏은 기득권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경제 사정이 어려운 만큼 업무하는 시간과 급여를 좀 줄이고 이를 청년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빠들도 일찍 퇴근하고 삼촌들은 일을 얻고…) 잡 쉐어링을 통한 “정규직” 일자리가 창출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건 사회적 합의와 나눔의 과정을 통해 서로 윈윈하는 길을 찾는 것인데 답답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