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찬, 모질라재단의 ‘한국형 불여우’ 조련사 (월간 PC사랑 12월호)

월간 PC사랑 2005년 12월호에 모질라 재단의 한국형 불여우 조련사라는 제하로 인터뷰 기사가 실렸습니다.

국내에 저보다 더 많이 더 훌륭히 모질라 프로젝트를 돕고 있는 많은 분들이 있지만 제가 대표로 인터뷰를 했습니다. 제가 웹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와 모질라 프로젝트와의 관계, 파이어폭스에 대한 과거와 현재 그리고 오픈 소스 철학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 기사를 통해 좀 더 많은 사람이 파이어폭스 팬이 되기를 바라는 소망이 있습니다.

부족한 사람을 인터뷰 해 주신 이정일 기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책은 지금 서점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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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PC사랑 12월 IT 인물열전 18

모질라재단의 ‘한국형 불여우’ 조련사
한글 모질라 프로젝트 운영자 윤석찬

‘불여우’의 돌진이 무섭다. 2004년 9월 14일 첫 선을 보인 뒤 100시간 만에 100만회 다운로드를 기록하더니 올해 7월에는 7천 500만회를 넘어섰고 10월 19일에는 ‘1억 다운로드’의 신기원을 이뤗다. 오픈 소스 웹 브라우저인 파이어폭스의 거침없는 질주에 마이크로소프트는 화들짝 놀랐다. 2005년 6월, MS 익스플로러의 점유율은 86.6%로 넷스케이프가 몰락한 뒤 처음 90% 밑으로 떨어져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MS의 발목을 물고 늘어지는 파이어폭스는 리눅스에 이어 오픈 소스 진영의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다. 바로 그 불여우의 한글화를 책임지는 윤석찬씨를 만났다.

이정일 기자

“불여우가 MS를 물었다!”
‘소프트웨어 왕국’ 마이크로소프트(MS)를 위협하는 ‘파이어폭스(firefox)의 돌풍이 기특해서일까. 파이어폭스의 한글화를 책임지는 윤석찬씨는 연신 싱글 벙글이었다. “불여우 점유율이 미국은 10%, 유럽은 20%를 노린다”면서 엄지를 세웠다. 얼마 남지 않은 파이어폭스 1.5 출시 때문에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한 돌을 맞은 불여우가 1억64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다는 소식에 피곤을 잊는다”며 환하게 웃었다. 다음커뮤니케이션 R&D 센터에서 개발팀장인 그가 어쩌다 ‘한국형 불여우’의 조련사가 되었을까.

94년 ‘웹’ 접하면서 ‘공유’에 관심

“94년 대학교 3학년 때 처음 웹(WWW)을 접했습니다. 그 전에도 인터넷은 있었지만 소규모였습니다. 웹이 들어오면서 인터넷은 비로소 이름값을 했지요. 이 때 웹을 가장 먼저 접한 사람들이 모임을 만들었는데, 이름이 ‘웹코리아”였습니다.

94년이면 PC통신이 한창이던 시절이다. ‘웹’이라는 낯선 문화를 일찌감치 접한 웹코리아 회원은 전국적으로 수십 명에 지난지 않았다. 이들은 웹에 관한 외국의 새로운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국내에 인터넷을 확산 시키는 활동을 펼쳐나갔다. 규모는 작았지만 한국 대표로 웹 표준을 정하는 W3C(world wide web consortium)에도 가입했다. ‘웹 프런티어’ (web frontier)는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회원들끼리 1년에 한 두번씩 서울과 부산,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워크숍을 가졌고 웹을 소개하는 책도 발행했습니다. 그러다가 90년 대 후반 들어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자연스럽게 활동을 접었습니다.”

윤석찬씨가 자신의 흔적을 장황하게 털어놓은 까닭은 그 시절 너무나 소중한 철학을 배웠기 때문이다. 바로 ‘나눔의 정신’이다.

영국 출신의 팀 버너스리가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에서 빚어낸 웹은 여러 사람들이 정보를 나누는 게 목적이었다. 연구소 직원들끼리 데이터를 주고받게 하려고 시작한 도전이 결국은 ‘정보의 바다’로 이어진 것이다. 누구나 클릭 한번이면 필요한 데이터를 자유롭게 찾는 인터넷은 ‘공유’의 다른 말이었다. 웹의 이런 정신은 소스 코드를 공개해서 많은 사람들이 소프트웨어를 함께 개발해나가는 오픈 소스와 궤를 같이 한다. 웹의 ‘공유’ 정신에 움찔한 윤석찬씨가 오픈 소스 진영에 발을 담근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오픈 소스에 관심을 갖게 된 결정적인 배경은 넷스케이프 때문이었습니다. 한 때 웹 브라우저 시장을 장악했던 넷스케이프가 MS 익스플로러에 덜미가 잡혀 추락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만회하려고 98년 초 넷스케이프 5.0 버전의 소스 코드를 공개하는 극약 처방을 내렸습니다.”

이로써 넷스케이프 5.0의 소스 코드를 개발하는 ‘모질라’(mozila) 커뮤니티가 탄생했다. ‘불여우’도 그렇지만 ‘모질라’라는 이름이 여간 독특한 게 아니다. 사실 모질라는 넷스케이프의 개발명이다. 넷스케이프 개발자로 알려진 마크 앤드리슨은 그 전에 ‘모자이크’로 이름을 날렸다. 1세대 웹 브라우저에 속하는 모자이크는 ‘앞으로’ ‘뒤로’ 버튼을 눌러 웹 페이지를 넘나들었고 전문 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쉽게 인터넷을 항해할 수 있어서 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자신이 일하던 국립 수퍼컴퓨팅 애플리케이션 센터(NCSA)가 모자이크를 독점하자 이에 반발해 실리콘밸리의 ‘큰 손’ 짐 클라크와 손을 잡고 넷스케이프사를 세웠다. 그리고 ‘모자이크를 잡아먹는 고질라’라는 뜻의 ‘모질라’ 프로젝트를 시작해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를 내놓았다. 넷스케이프는 나오자마자 모자이크를 몰아내 멋지게 복수했지만 이후에도 ‘모질라’라는 개발명은 계속 이어졌다. 이 인연으로 넷스케이프의 소스 코드를 개발하는 커뮤니티를 ‘모질라’가 된 것이다.

“당시에는 익스플로러에 밀리고 있었지만 넷스케이프는 한때 최고의 웹 브라우저였습니다. 프로그램 개발자라면 누구나 소스 코드를 들여다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지요.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모질라 한글화에 도전
PC 애플리케이션 중에서 오픈 소스가 거의 없던 때라 모질라 커뮤니티의 출현은 윤석찬씨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넷스케이프 직원이자 모질라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던 ‘릭 엘리엇’(Rick Elliott)으로부터 ‘모질라 한글화를 준비 중’이라는 내용의 메일을 받았다 생면부지의 릭 엘리엇으로부터 편지를 받은 것은 당시 윤석찬씨가 W3C에서 XML 관련 그룹에 참여했던 게 인연이었다. 모질라 커뮤니티는 웹에 대한 이해가 깊은 그가 한글 번역의 적임자라고 생각하고 접촉했던 것이다.

“98년 8월, 웹코리아 사이트에 한글 모질라 프로젝트에 관한 페이지를 만들고 한글화 작업을 계획했습니다. 넷스케이프는 4.53버전까지 한글판이 나와 있어서 넷스케이프를 기초로 한 모질라의 한글화나 리소스 추가 등 이른바 ‘지역화 작업’에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역화 작업은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넷스케이프의 소스 코드가 공개되면서 닻을 올린 모질라는 생각보다 엄청난 프로젝트였다. 모질라 커뮤니티는 기존의 소스 코드를 통째로 뜯어 괴는 대수술을 감행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수술이 끝나지 않고서는 지역화 작업은 시작할 수 없었다. 그 시간이 길어지면서 윤석찬씨의 관심은 식고 말았다.

“모질라 프로젝트를 까맣게 잊고 살던 2000년 9월 모질라 마일스톤(일종의 프로토타입) 17이 완성되었습니다. 이것이 한글 언어팩은 당시 서울대 재학 중이던 최준호씨가 만들었습니다. 최준호씨는 이후에도 모질라 0.6과 0.9버전의 한글 언어팩 작업을 혼자서 이끌어 갔습니다.”

윤석찬씨가 모질라와 다시 만난 것은 2002년 5월 무렵이다. 웹코리아 홈페이지를 정리하다가 우연히 98년 만들었던 모질라 페이지를 보고는 문득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알아보니 0.9.2 언어 팩이 나온 뒤 1년 가까이 한글화가 되지 않고 있었다. 최준호씨가 개인사정으로 손을 놓은 뒤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얼마 뒷면 모질라 1.0이 나올 상황이었다. 98년 시작한 프로젝트가 4년 반 만에 빛을 보는 순간에 한글 버전이 빠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는 다시 소매를 걷어붙였다. 한글 모질라 프로젝트(www.mozilla.or.kr) 재가동에 들어간 것이다.

“그 전에 혼자서 언어 팩을 만들었던 최준호씨와 모질라의 또 다른 전문가인 신정식씨에게 프로젝트를 가동한다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두 분은 매우 반가워하면서 진심으로 격려해줬습니다.”

2002년 6월, 모질라 1.0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한글 언어팩도 나왔다. 한글을 2바이트여서 1바이트 영어로 만든 원본 프로그램을 번역하는데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고생한 보람을 여우럽게 즐기기에는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익스플로러 6.0의 점유율은 96%를 넘었고 모질라는 겨우 1%에 머물렀다. 98년 11월 AOL이 넷스케이프를 인수해서 모질라 소스 코드를 기반으로 내놓은 ‘넷스케이프 7.0’을 합쳐도 점유율은 4%를 넘지 못했다.

파이어폭스로 재기 성공

“모질라 1.0의 실패는 당연한 결과였는지 모릅니다. 모질라는 웹 브라우저와 e-mail 프로그램, html 편집기, 체킹 클라이언트를 한데 쓸어 담아서 대단히 무거웠습니다. 기능을 욕심내려다가 속도를 놓지고 말았지요. 그래서 모질라 커뮤지티는 웹 브라우저와 e-mail 프로그램을 떼어내기로 했습니다.”

모질라에서 웹 브라우저를 떼어내 독립적으로 개발하는 ‘피닉스(Phoenix)’ 프로젝트는 2003년 6월 닻을 올렸다. 처음에는 웹 브라우저 이름이 ’파이어버드(Firebird)’ 였지만 나중에 ‘파이어폭스(Firefox)’로 바뀌었다. 우리말로 ’천둥새‘인 e-mail 프로그램 ’썬더버드(Thunderbird)’ 프로젝트도 함께 출범했다. MS의 심장을 노리는 ‘불여우’와 ‘천둥새’가 땅을 박차고 오를 준비를 하면서 윤석찬씨도 다시 바빠졌다. 낮에는 회사 일로, 밤에는 지역화 작업으로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2003년 7월, 모질라 오픈 소스 진영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 닥쳤다. AOL이 모질라 커뮤니티의 핵심 멤버인 넷스케이프 개발자 50명을 해고하면서 사실상 모질라와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AOL 이별 선물로 200만 달러는 내놓았고 이 돈으로 모질라 커뮤니티는 비영리재단으로 거듭났다. 2003년 7월 15일, 모질라재단은 직원 3명으로 출발했다. 규모는 초라했지만 AOL과 작별한 것은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AOL에서 해고된 인력들은 오픈소스의 강력한 지원자인 썬마이크로시스템즈와 IBM 등에 흡수되었다. 모질라 커뮤니티가 AOL의 우산 아래에 있을 때는 관심도 없던 오픈 소스 후원사들이 모질라재단이 독립해 나오자 두 팔 벌여 반갑게 끌어안았다.

“하나의 기업보다는 여러 기업, 그것도 오픈 소스에 강력한 지지를 보내는 후원사들과 가까워진다는 것은 개발자로서도 반가운 일이지요. AOL에서 분리될 때는 걱정을 많이 했지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든든한 회사 덕분인지 파이어폭스는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2004년 11월 9일, 파이어폭스 1.0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시럼 서비스기간 ‘다운로드 800만회’는 흥행의 예고편이었다. 정식 버전이 나온 100일만에 2천500만회, 2005년 4월 말에는 5천만회, 7월 26일에는 7천500만회, 그리고 10월 19일 드디어 ‘1억 다운로드’의 신기록을 세웠다. 불여우의 질주로 익스플로러는 당황했고 점유율도 90% 대 밑으로 떨어져 좀처럼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파이어폭스가 성공하면서 오픈 소스 진영은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MS의 라이벌인 구글도 모질라 재단의 든든한 후원자입니다. 파이어폭스의 검색 엔진은 구글이고, 그 대가로 구글은 재단에 꽤 많은 후원금을 내고 있습니다.”

2005년 8월, 모질라재단은 ‘모질라닷컴’을 독립시켰다. 오픈 소스의 철학은 재단이 이어가고 익스플로러와 경쟁하는 사업은 모질라닷컵이 맡았다. 모질라의 순수성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더욱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뜻이다. 모질라재단과 모질라닷컴의 직원은 40여명. 이들을 중심으로 100여명의 오픈소스 프로그래머들이 파이어폭스의 개발을 이끌어가고 있다. 이 중에서 한국인은 윤석찬씨를 비롯해 모두 4명이다. 윤석찬씨와 김정균(네오위즈 시스템 엔지니어링)씨는 한글화를 비롯한 지역화 작업을 맡고 최준호(시디네트워크 연구소장)씨와 신정식(카이스트 박사과정)씨는 국제화 작업 모듈을 개발한다.

“모질라 프로젝트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훨씬 더 많지만 소스 변경 작업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CVS(concurrent version system) 권한을 가진 사람은 100명 정도입니다. 모질라 커뮤니티는 오픈 소스이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권한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자격 조건이 굉장히 까다롭습니다.”

오픈 소스 철학에 공감
모질라 오픈 소스는 프로그램 코드를 공개해서 여러 사람이 함께 개발해나가는 시스템이지만, 소스 변경 절차는 굉장히 엄격하다. 예를 들어, A라는 일반 회원이 파이어폭스에서 버그를 발견해 패치를 만들었다고 해도 이것이 실제로 적용되기까지는 두 단계를 거친다. CVS 권한을 가진 그룹 회원이 검사하는 일반 리뷰, 그리고 상위 10명으로 구성된 드라이버들이 진행하는 수퍼 리뷰다. 일반 리뷰에서는 기술적인 부분을 살피고 수퍼 리뷰에서는 소프트웨어가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고려해서 소스 변경을 최종 결정한다.

그룹 회원이 드라이버가 되기도 어렵지만 일반 회원이 CVS 권한을 가진 그룹 회원으로 승격되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CVS 권한을 얻으려면 실력도 실력이지만 인내가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모질라 사이트에서 활동하면서 버그나 패치를 열심히 올려야지요, 그러다 그룹 회원이나 재단측에서 ‘아, 이사람 괜찮다.’는 신뢰가 생기면 권한을 주지요.”

모질라재단은 심각한 버그를 해결하는 사람에게는 500달러를 주고 있지만 윤석찬씨를 비롯한 오픈 소스 개발자들은 ‘돈’이 목적이 아니다. 이들이 개인 시간을 쪼개가면서 모질라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것은 ‘오픈 소스’라는 철학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MIT 출신의 리처드 스톨만이 시작한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은 독점을 거부하는 프로그래머들을 ‘오픈 소스’ 진영으로 결집시켰다.

오늘날 오픈소스 진영은 소프트웨어를 어느 선까지 공개할 것인가,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느냐에 따라 여러 조직으로 나뉘었지만 ‘기술공유’라는 대원칙은 매한가지다. 리눅스와 파이어폭스를 선두로 거대한 파도가 되어 IT 시장을 넘실거리는 오픈 소스, 하지만 국내에서는 기반이 취약하다. 파이어폭스의 점유율도 세계 평균을 밑돈다.

“외국에서는 파이어폭스를 쓰는 데 제약이 없지만 한국의 웹 사이트들은 대부분 MS 익스플로러에서 돌아가게 설계되었습니다. ‘액티브 X’처럼 세계 표준이 아니 MS만의 기술을 쓰기 때문에 파이어폭스에서는 에러가 생깁니다. W3C의 권고안이 있는데도 한국은 유난히 MS의 비표준을 따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MS의 독점 현상은 외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외국의 웹 사이트들은 ‘크로스 브라우징(cross browsing)을 따르려고 애쓴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서로 다른 프로그램의 공통 요소를 가져와 균형을 맞추는 표준 웹 기술을 쓴다는 얘기다. 그러나 ‘IT강국’이라는 한국은 오히려 뒷걸음이다. 웹 서버는 아파치나 PHP 등 오픈 소스를 쓰면서도 표현 기술을 MS 프로그램에 종속되어 있다. 그래서 익스플로러가 아닌 웹 브라우저로는 게임을 즐기지 못한다. 인터넷 뱅킹도 마찬가지다. 공인인증 서비스를 처음 시작할 때는 독자 암호기술인 128비티 시드(SEED)를 써서 익스플로러와 넷스케이프에서도 문제가 없었지만, 넷스케이프가 웹 전쟁에서 패하자 익스플로러와만 궁합을 맞추기 시작했다.

“한국은 MS 익스플로러에 종속적입니다. 이제는 그 족쇄에서 풀려나야 합니다. 우선은 공공기관 웹 사이트부터 파이어폭스와 같은 비MS 계열의 웹 브라우저가 이상 없이 돌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독점 기업의 피해자는 결국 네티즌들이다. 경쟁이 없으면 어느 기업이나 기술 개발에 게으름을 피운다. MS가 넷스케이프와 경쟁에서 이긴 뒤 익스플로러 6.0으로 몇 년간 버틴 것은 그래서다. 경쟁은 기술 향상을 꾀한다. 파이어폭스가 인기를 모으자 MS가 부랴부랴 익스플로러 7.0버전을 준비한 이유다. 윤석찬씨가 모질라 오픈소스 진영에서 애쓴 보람은 이렇게 독점 기업을 자극하는 것으로 알찬 열매를 맺고 있다.

– 출처: 2005년 PC사랑 12월호

여러분의 생각

  1. 와우 멋집니다
    차니님 축하드려요 ^^

  2. 헉, 어제 보고 왔는데.. 차니님이 그 분 -_- 이셨군요-

  3. 학교 도서관에서 PC사랑을 보다가 이 글도 보았습니다. ^^;
    읽어보니 웹에 대해서 굉장히 일찍부터 관심을 가지셨다는 데 놀랐고, 또한 불여우 소스 코드 개발 과정에 대해서도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제 예상(?)대로 소스 자체는 공개이지만 프로젝트에 쓰이는 실제 소스 트리를 수정할 권한은 제한되어 있더군요)

    앞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했으면 좋겠습니다.

  4. 웹에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셨는지 궁금해서 내일 바로 서점으로 달려가야겠습니다. ㅋ

  5. 차니님 나오셨군요.. 대단해요~

  6. ㅋㅋ 언제가 부터 마소만 봤는데..
    서점 들으는 길에 한번 봐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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