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제도에 대한 4차 산업혁명 대정부 권고안 유감(遺憾)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에서 최근 정부에 ‘4차 산업혁명 대정부 권고안’을 제출하였습니다. 우선 국내의 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해서 총 80페이지에 최근 기술 동향 변화에 따른 사회 변화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제안들을 담았다고 생각합니다.

전반적으로 대부분 동의하지만, 본 권고안이 간과하고 있는 한 가지 부분이 있어서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과거 산업이 혁명적으로 변화하는 시기에 항상 문제로 대두 되는 것이 새로운 기술이 가져오는 노동의 형태와 일자리의 변화입니다. 농사를 짓던 사람 대신 공장에서 물건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사무실에서 서비스 하는 사람, 그리고 이제 어디서나 원격에서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 사실 사람은 변화가 없지만 기술과 도구가 우리를 변화시켜왔죠.

그런데, 권고안 중 “4. 인재, 데이터, 스마트자본” 부분에 나오는 ‘인재’라는 용어는 어딘가 불편합니다.

인재는 전통적 노동자와 구별된다. 공장의 생산직이나 절차에 따라 일하는 사무직과 다르다. 생산 라인에서 최고의 노동자와 평범한 노동자의 성과 차이는 크지 않다. 하지만, 최고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평범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성과는 수배, 수십 배 수준의 차이를 보일 수 있다. 심지어 최고 엔지니어의 업무를 평범한 엔지니어는 아예 못할 수도 있다. 기업가 정신을 지닌 소수의 창업자들은 새로운 회사와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원천이며, 스스로 탐구하는 각 분야의 장인들은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요체이다.

‘천재 한명이 10만명을 먹여살린다’ 정도로 요약되는 인재에 대한 이러한 정의가 불편한건 저 뿐일까요? 물론 사람의 능력의 차이는 인정하지만, 여기서 정의하는 인재는 확실히 다수는 아닌 것은 명확합니다. 그 다음 이어진 “5. 조력자로서의 정부”에서는 “정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와 전통적 노동자 사이의 차이를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라고 적으면서 소수를 위한 정책을 쓰기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저는 권고안에서 소수 의견으로 표시된 황선자위원의 “인재와 전통적 노동자 사이에 본질적 차이는 없으며 전통적 노동자도 누구나 교육을 통해 인재가 될 수 있으므로, 정부의 역할은 전통적 노동자와 인재의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새로운 기술 환경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여 혁신역량을 갖춘 인재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라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그러면서, ‘권고안이 말하는 인재’를 위한 노동제도의 개혁, 특히 주52시간의 일률적인 적용에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노동제도는 여전히 2차 산업혁명 시대에 머물러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다양화되는 노동의 변화를 반영하지도, 혁신을 이끄는 인재들을 포용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최근 화두가 된 ‘긱 이코노미(Gig Economy)’나 ‘플랫폼 노동자’ 등의 등장과 그에 따른 변화를 담아내지 못한다. 주 52시간제의 일률적 적용에 개별 기업, 노동자가 주도적・자율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워, 인재 성장의 걸림돌이 되거나 기업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저도 IT업계에 20년을 넘게 일해왔고, 닷컴시대 초기에 스타트업에서 정말 신나게 오랜 시간 일한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IT 기업에 일하는 분들은 자율적인 환경에서 즐겁게 일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다수 IT 회사에 원하는 만큼 일하고 싶은 ‘인재’들도 있지만, 자율성 보다는 상사의 업무 지시, 야근을 할 수 밖에 없는 업무량 등에 처해 있고, 일과 삶을 균형을 찾고 싶은 분들이 더 많습니다.

‘권고안이 말하는 인재’들이 자율적으로 원하는 시간 만큼 일할 수 있는 방법은 현행 제도 내에 이미 마련되어 있습니다. 지난 7월에 나온 재량근로제 운영 가이드에 보면, 탄력적·선택적 근로시간제도, 사업장밖 간주근로시간제도, 재량근로제도, 보상 휴가제 등을 통해 기업이 자율적으로 시행할 수 있고,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IT업계 종사자를 위한 업무 범위 역시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재량권”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관리자의 구체적인 업무 지시 없이 개인의 자율적 업무 재량권만 확보되어 있다면 근무 시간 산정은 불필요하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즉, 52시간 제도가 일률적으로 적용되더라도, ‘권고안이 말하는 인재’들이 언제든지 일하고 싶은 더 많은 시간은 충분히 보장됩니다. 즉, 현재 시행 중인 법 제도 상에 이해 충돌이 전혀 없는 것이죠.

IT 산업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실리콘 밸리의 경우 역시 자율적 업무 재량권과 함께 충분한 보상이 뒷받침 되는 경우에는 근로 시간에 제약이 없습니다. 캘리포니아 노동법에 따르면, 모든 노동자는 주 40시간 근무가 기본이지만, 추가 근무 시간은 시급의 1.5-2배를 주어야 합니다. 특히, SW 개발자가 지적, 창의적 업무를 수행하고, (2018년 기준) 시간당 최소 $43.58, 연 $90,790.07이상의 임금을 받는 경우 근로 시간 제약을 면제하는 예외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IT 업계에서 회자되는 “구로의 등대”, “폐 짤라내고”, “이혼 당하며” 소프트웨어 개발해 왔던 사람들이 재량권이 있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요. 정말 충분한 보상을 받으면서 일해왔던 것일까요. 소수의 일하는 행복을 가진 “인재”들 주변에서 강제로 삶의 행복을 뺏기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러한 현실을 돌아보면, 설사 IT 업계라 하더라도 여전히 노동 시간을 줄이는 것은 필수입니다. 국내 스타트업과 IT업계의 고질적인 워크홀릭 업무 문화를 개선해야 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진짜 인재라면, 오히려 사람들의 노동 시간은 더 줄여 누구나 적게 일하면서도 많은 임금을 받고, 생산성은 높아지는 방법을 찾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일은 적게 하고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게 근본적인 욕망이니까요.

전통적으로 한국의 노동 시간은 세계 최고이고, 이로 인한 노동자의 삶의 질은 최악입니다. 우리나라 사회 전반에서 일하는 대다수 노동자의 현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노동 시간 감소라는 큰 흐름과 사회적 공감대를 희석시키고, 이를 거꾸로 되돌리는 권고안은 오히려 IT 분야 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전히 소수의 의견으로 다뤄진 황선자 위원의 “정보통신기술의 도입・활용으로 금융업 등에서 대량 인원 조정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노동기본권 및 노동조건이 열악한 플랫폼 노동자가 양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는 노동에 대한 보편적 보호조치를 강화하고 숙련향상을 위해 재교육・전직 지원과 같은 공공고용서비스를 확대하는 등 적극적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주 52시간 상한제는 현재 노사가 대립하고 있는 의제이고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노동시간 단축이 요구되며, 주 52시간 상한제도 지키지 못하는 기업의 일자리는 국민의 일자리 불안을 없앨 수 없으며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가 아니다“라는 의견에 눈길이 갑니다. 이러한 중요한 생각이 소수 의견으로 다뤄진것은 매우 유감입니다.

‘권고안이 말하는 인재’들이 충분히 역량을 펼치기 위한 조건은 이미 현행 제도 내에서 수용할 수 있습니다. 충분한 업무 자율권과 보상이 전제가 된다면 말이죠. 이는 주 52시간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경영자들이 결정할 일입니다.

국가는 오히려 4차 산업 혁명의 혜택이 전체 노동자의 삶의 질의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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