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개발 문화의 이면(2) – 자율적 개발 환경을 선택하라

연재를 통해 개발 의욕을 고취할 수 있는 다양한 개발자 문화와 이를 잘 가꿀 수 있는 방법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코딩 테스트에 이어 두 번째로 개발 환경의 자율성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개발자들의 노트북은 회사 규정에 따른 일괄 지급이 아니라 개발자가 정해진 예산 범위 내에서 자신의 장비를 선택할 수 있는가? 개발 장비 구매에 대한 예산은 충분한가?… 물론 다른 장비도 좋지만 맥북 프로 최고 사양이라는 의미에는 그 조직이 정말로 Core 기술 개발에 투자할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지표 였다. 임형준, 삼성의 반성…”SW인력 절반이 기초수준 실력”을 읽고

개발자에게 자신의 컴퓨터나 소모품, 개발 환경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건 개발 생산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참고: 개발자의 생산성에 좌우하는 것들)

2006년 Daum 개발자 추천 하드웨어!라는 글에서 보시다시피 “Daum의 개발자 지원 제도 중에는 자산 포인트(일명, 개발자 마일리지) 제도가 있습니다. 매년 일정 포인트(200만원)를 지급하여 자신이 원하는 개발 환경을 만들어 사용하도록 회사에서 지급해 주는 것이죠. 사내에 있는 자산 포인트 관리 시스템으로 구매도 하고, 자산 교환으로 포인트 교환을 하기도 합니다.”

역시 제가 직접 입안하고 시행했던 제도였습니다. 당시 업계 최초이기도 하고, 10여년간 지속되어서 카카오와 합병 당시 카카오 개발자조차도 감동했던(?) 제도입니다.


2006년 당시 자산 포인트로 구매한 랩탑, 모니터, PC를 쓰는 Daum 개발자들

■ 개발자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
그 시초는 이렇습니다. 2005년에 Daum 개발자들이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사내에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대부분 SW나 책을 사 달라, 교육을 보내 달라, 이런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부분 메모리를 올려 달라, CPU를 바꿔 달라, 키보드가 안 맞는다 등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물론 개발자용 PC 사양은 일반 직원 보다 훨씬 높을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결제를 올려서 업그레이드가 가능했는데도 말입니다.

하지만, 개발자들은 그러한 프로세스가 있어도 특유의 귀차니즘(?)으로 인해 결제를 올리길 꺼리거나 그런 프로세스의 존재 자체로 선택권을 침해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구매 부서에 매년 개발 직군이 인당 얼마만큼 자산 구매 예산을 쓰는지 확인을 해보았더니, 감가상각(3년간) 추가 예산을 포함해서 인당 매년 100만원 정도가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개발자들에게 매년 200만원어치의 자산을 원하는 만큼 구매하도록 자율권을 주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였고, 당시 Daum 경영진들은 수용을 해주게 됩니다. 이 제도 덕분에 당시 네이버로 몰리던 개발자들이 Daum으로 입사 지원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물론 초기에 큰 투자가 수반되지만 여러 가지 이점을 예상했습니다. 첫째, 구매 부서가 아무리 좋은 제품을 저가로 일괄 구매를 해 준다 하더라도, 자신의 개발 환경과 차이가 있게 마련입니다. 개발자 자신이 직접 개발 환경에 맞는 장비를 선택하는 만큼 자산 포인트 내에서 최대의 가성비 높은 장비를 선택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둘째, 이렇게 구매된 장비는 각자의 자산 포인트 안에서 (감가상각 연한에 따른 포인트 재계산을 거쳐) 서로 거래가 가능하므로, 첫 해 년도 초기 투자가 진행된 이후부터는 유휴 자산의 거래가 활발해서 신규 자산 구매 비율이 조금씩 낮아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들 자산 중 일부는 일반 직군에게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맥을 사용하고 싶어하던 일반 직군들도 개발자들이 쓰던 좋은 중고 맥북을 선택할 수 있는 이점도 있으니까요.

■ 자산 포인트 제도가 가져온 변화
2006년 자산 포인트 제도 시행 첫해 Daum 개발자들은 1. 소니 바이오 VGN-TX26 노트북, 2. DELL 2407WFP 모니터, 3. i-rocks KR-6170 키보드 순으로 새로운 자산들을 구매했는데, 즉 집이나 회의실에서도 쓸 수 있는 서브 노트북과 큰 모니터를 바꾸었습니다. 세 번째로, 이로 인한 업무 생산성 향상은 완전히 부가적인 것이었죠. 당시만 하더라도 개발자도 PC와 노트북을 선택하도록 했었으니까 PC 1대 노트북 한 대는 거의 꿈과 같은 것이었죠. 그 뒤로 모바일 태블릿이 나오면서 개발자는 2.5 PC제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이 제도는 초기부터 매우 성공적이었고, 개발자들에게는 회사의 자랑 같은 것이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제가 퇴사할 시점까지 이 제도는 계속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 제도 역시 운용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우선 구매 품목이 다양하다 보니 이를 처리해서 전달하는 구매 부서의 업무가 과중되었고, 결국 구매 요청에서 개발자의 손에 들어가는 기간이 점점 늘어나는 것입니다. 제가 초기 제도 입안했을 때는, 개발자가 직접 법인 카드로 쇼핑몰에서 구매하고 직접 배송 받는 것이었지만, 구매 부서가 자산 관리 상 통제(?)를 해야 한다는 명분 때문에 조금 타협을 한 결과였습니다.

물론 온라인 쇼핑몰에서 주문하는 것만큼 짧아지지는 못했지만, 많이 구매되는 물품을 미리 확보한다든지 맥북이나 모니터 등에 대한 리스 프로그램을 활용 한다든지 해서 조금 더 속도 개선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개발자에게 모두 맡기면 자산 포인트를 함부로 유용(流用)할-예를 들어, 필요 없는 물품이나 개인적인 구매-할 거라는 따가운 시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매 부서의 통제에서 벗어나 개발자에게 자율을 줬을 때, 개발자 특유의 특성 때문에라도 책임감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여전히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개발자를 믿는 신뢰가 담보된 문화를 가져야만 좋은 개발자 회사라고 생각하니까요.

■ 자율적 개발 환경 선택의 장점
또 하나의 부수 효과는 개발자들이 좀 더 기술 변화에 민감하게 빠르게 바뀐다는 점입니다. 2007년 간단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아이맥이나 맥북을 구매하는 개발자가 많이 늘어났습니다. 덕분에 사내 인트라넷 환경이 오로지 윈도우 기반이던 것이 다양한 운영체제와 웹 브라우저를 지원하도록 바뀔 수 있었습니다. (Daum 조차도 이 제도가 아니었다면, IBM이 로터스 기반으로 만들어 준 액티브X 기반 사내 인트라넷이 바뀌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또한, 맥의 개발 생산성은 지금은 잘 알려진 바이지만 당시 아이폰 열풍이 불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Daum은 국내 아이폰 출시 전에 이미 다음앱과 다음지도앱을 만들었습니다. 사내 개발자들에게 자산 포인트로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을 선택해서 구매하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뒷심이 약하긴 했지만, 초기에 모바일 선도 기업 이미지를 굳힐 수 있는 데 일조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제도의 가장 큰 내부의 적(適)은 바로 개발자 만을 특혜한다는 다른 직군으로부터의 이의 제기였습니다. 물론 다른 직군들도 컴퓨팅 환경에 따라 생산성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디자이너도 큰 모니터가 필요하고, 영업 직군도 엑셀 계산을 잘 하려면 좋은 PC를 써야 하죠. 하지만, 개발자가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직군이고, 이들에게 더 많은 책임과 자율성을 주어서 회사의 기술 혁신을 이루어 가야한다는 초심에 집중한다면, 좋은 개발자 문화를 만들 수 있는 토양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회사들은 개발자들이 직접 개발 장비를 고르고, 개발 환경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자율권을 주고 있나요?

연재 목차

여러분의 생각

  1. 완전한 자율은 쉽지 않은 문제이고, 다양성을 수용하면서 선택의 여지를 주는 정도가 가장 좋은 듯 합니다. 과거에 완전 자율(심지어 한 때는 비용도 unlimited)로 해본 적이 있는데, 타인이 재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니크한 장비(예: UMPC, 16인치/3kg+ 노트북)를 선택하는 분들이 생기더군요. 파손/고장/분실 등도 염두에 둘 수 밖에 없는데 A/S 정책이 다르므로 그에 따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도 다소 골치아파지는 문제도 있고요.
    아님 아예 복리후생/상여 개념으로 취급해서 회사 자산으로 잡지 않는 방법도 있긴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BYOD를 인정하는 형태가 되는건데, 이 경우 자산보다는 보안 등을 신경 써야죠. 또한 그렇게 구매한 장비를 회사 업무에 안 쓰고 집에서만 쓰시는 분들도 생길 수 있다는 문제가… -.-

    최근의 경향은 고사양 노트북보다는 클라우드 데스크탑(혹은 클라우드 사용 credit?) + 적당한 사양의 맥/윈도우/리눅스 노트북 + 모니터 1~2개 정도인 것 같습니다. :)

  2. 말씀하신대로 자기 장비를 회사에서 쓰는 Bring Your Own Device(BYOD)가 궁극적 답이긴 한데, 경직된 자산 관리 제도가 발목을 잡는 건 맞는 것 같습니다. (사내 보안도 중요하고요. 전 회사 장비를 자율적으로 구매해서 장기적으로 자기 것으로 여기는 문화가 생기면 부수적인 문제는 해결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감각상각 끝난 회사 자산을 개인적으로 구매하려고 해도 쉽지 않더라고요. ㅠㅠ

  3. 대부분의 개발자들은 일이 아닌 상황같은 상황?에 놓여도 개발을 하게 되는 습관이 있어서, 만약 잉여 개발 인력이 생기면, 여러 상황이 있는 개발 환경에 던져 놓으면 알아서 무엇이든 만들려는 경향으로 인해 개발을 하게 되죠~!!
    만약 잉여 개발자가 생기면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는것도 나쁘지 않은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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